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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Sep 06. 2020

넌 나에게 패배감을 줬어!

고전의 재味발견 : 파우스트 (Faust)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듯이 고전 읽기 후 독후활동을 브런치에 기록하는 목적은 이 글을 통해 한 분이라도 고전 읽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 때문이었다. <페스트>를 읽고 브런치에 독후감을 올린 후 바로 <파우스트> 1, 2권을 읽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내려놓은 후에도 파우스트에 대한 독후감을 써 내려가지 못했다. 글쓰기 슬럼프라도 찾아왔나 싶었다. 누가 마감 시한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마음 편하게 쓰고 싶은 말이 생각나면 써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물론 그사이에 아내에 대한 헌정 글 ‘미처가(美妻歌)’를 두 편, 작가로의 길에 출사표를 던진 글을 한 편 작성하긴 했지만 ‘고전의 재味발견’은 나름의 목적과 방향을 정해 놓은 글이라 부담감이 눈덩이처럼 켜져만 갔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끝까지 미룰 수만은 없었다.


 사실 녹색창에 ‘파우스트’를 검색해 보면 작품 해설, 줄거리, 작가 소개까지 매우 많은 글과 정보가 나온다. 글의 출처는 출판사부터 독문학 교수님까지 다양하고 깊이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글과 비교해 좋은(나은) 글을 쓸 자신도, 새로운 정보를 더할 자신도 없었다. 그러니 나만의 색깔로 고전에 대한 독후활동을 하겠다는 자신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전에 읽었던 다른 고전들도 녹색창에 검색해 보면 결과는 비슷했다. 그런데도 유독 <파우스트>의 독후활동이 자신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오랜 고민 끝에 다다른 결론은 하나였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하기는 했다. 그것은 바로 내 상상력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는 괴테의 무한 상상력 때문이었다. 


 1749년생인 괴테보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그래도 월등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시각정보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한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상상력 덕분에 독서를 할 때면 인물과 상황에 대해 매우 세부적인 부분까지 머릿속에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곤 했다. 영화를 보는 재미와 책을 읽는 재미의 경계가 분명했고, 때론 책이 더 좋았다. 그런데 <파우스트>를 읽을 때만큼은 그런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았다. 전혀 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안개가 잔뜩 긴 대관령 옛길을 운전하는 것처럼 시종일관 답답하고 불편했다. 작품의 내용을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등장인물을 현재의 인물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 자신을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등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고전 읽기에 대한 독후활동을 했는데, 이 책에서는 처음부터 그 길이 막혀 버리고 말았다. 결국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독서와 독후활동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이 책은 상상력이 결여된 독서는 결국 노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파우스트>는 <만들어진 신>이나 <마의 산>처럼 나에게 ‘패배감’을 안겨준 작품에 그 이름을 올렸다.


 그러므로 아직 <파우스트>를 읽지 않은 분들께는 읽지 말라는 조언을 드린다.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괴테가 평생을 들여 쓴 작품이니 작품성과 문학성, 재미와 감동을 새삼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파우스트 박사뿐만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의 대사까지 하나같이 주옥같지 않은 것이 없고, 무대나 상황의 세부적인 묘사는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세련되고 정교하다. 하지만 눈으로만 읽을 뿐 상상하지 못한다면 작품의 절반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작품의 이해와는 다른 측면이다.) 또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간의 구원’이라는 주제는 워낙 많이 변주되어 솔직히 새롭지도 않다. 그러니 꼭 <파우스트>를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당신이 평범한 상상력을 가진 분이라면 말이다. 평범한 상상력으로 도전했다가 쓴 패배감을 맛본 사람은 이미 하나면 충분하다. 만약 당신이 남들보다 비범한 상상력의 소유자라면 기꺼이 <파우스트>에 도전해 보기를 권한다. 내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경험하고, 괴테의 무한한 상상력을 맛보게 된다면 부디 이곳에 들러 그 소회를 나누어 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역설적이게도,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신의 입을 빌려 한 말,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인다. (Es irrt der Mensch, solange er strebt.)’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고전 읽기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고전 읽기를 통해 우리 삶의 진정한 방향과 의미를 쫓아가는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 읽기에 노력하지 않았다면 패배감을 맛볼 이유도 없었을 터이니, 패배감에 멈추지 말고 다시 나아가라고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파우스트>는 결국 즐거운 독서가 되지는 못했지만, 다음 고전에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픈 불씨가 되어 주었다. 또한 약간의 오기가 발동해 다음 읽을 책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선택하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세계를, 어떤 삶을 탐구하게 될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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