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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Sep 19. 2020

<순수의 시대>를 꿈꾸다.

고전의 재味발견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특기라고는 하나 없는 ‘평범함의 모범’인 내가 가진 유일한 개인기는 휘파람 불기다. 입술을 좁게 오므리고 혀끝으로 입김을 불어서 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도 비교적 잘 부는 편이지만, 입술을 꼭 다문 채로 마치 복화술처럼 이 사이로 조금씩 입김을 흘려보내는 독특한 방법으로 부는 휘파람은 상당히 수준급 실력이다. 내 서툰 유머와 잔재주를 못마땅해하는 아내도 휘파람 실력만큼은 인정해 주니 그것만으로 어깨가 으쓱하긴 하지만, 기회가 닿으면 많은 분들께도 그 ‘천상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기는 하다.


 휘파람 레퍼토리는 가요부터 팝송까지 다양한데 요즘 한창 즐겨 부르는 곡 중 하나가 그룹 피노키오가 1992년에 발표한 <사랑과 우정 사이>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심취해 있던 영웅본색이나 천녀유혼의 주제가를 주로 불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입에서 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모르는 분이나,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을 위해 가사 일부를 소개해 본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너의 모습 

   시간은 조금씩 우리를 갈라놓는데

   어디서부턴지 무엇 때문인지 

   작은 너의 손을 잡기도 난 두려워


   어차피 헤어짐을 아는 나에겐

   우리의 만남이 짧아도 미련은 없네

   누구도 널 대신할 순 없지만

   아닌 건 아닌 걸 미련일 뿐     


   멈추고 싶던 순간들 행복한 기억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던 너를

   이젠 나의 눈물과 바꿔야 하나

   숨겨온 너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날 보는 너의 그 마음을 이젠 떠나리

   나 자신보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널 아끼던 내가 미워지네


 남사친이니 여사친이니 하는 말들로 넘쳐나는 요즘의 정서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 남녀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어찌나 잘 그려내고 있는지 노랫말을 가만히 음미하고 있으면 어느새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뜨거웠던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작은 너의 손을 잡기도 두려울’ 정도의 순수함과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그때가 못내 그리웠는지 한동안 이 멜로디를 연주했다.       


 현재의 행복이나 불행과 상관없이 인간은 언제나 과거를 동경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DNA 지도에 그렇게 그려져 있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한물 간 유행이라며 비웃음을 사던 패션이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가장 뜨거운 최신 유행이 되는 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추억을 쫓는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순수의 시대’를 꿈꾸던 시기에 즈음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게 되었다. 물론 <파우스트>에 대한 반발심으로 고른 책이긴 했지만, 오래전에 사두고 책장에 묵혀두었던 책을 정확히 이 시점에 선택한 것이 우연일까 싶었다. 이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엄청난 흡인력으로 작품에 몰입했는데, 중간중간 <사랑과 우정 사이>의 가사가 자꾸 떠올랐다. 괴테의 소설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곡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래와 같은 베르테르의 독백은 수많은 '작은 너의 손을 잡기에 두려운' 설렘 중 하나다. 우리 모두 '한때' 그러했던 감정을 여러분도 느껴보시길 바란다. 


"아아, 무의식 중에 내 손가락이 로테의 손가락에 닿거나, 발이 탁자 밑에서 서로 부딪치기라도 할 때 내 혈관이란 혈관이 얼마나 마구 뛰고 치솟는지 모른다. (중략) 내 감각 전체가 현기증에 걸린 듯 어지러워진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다. 아마도 온몸에 백만 볼트 전류가 흐르고 귀에서는 천상의 하모니가 들여왔으리라. 작품의 형식이 친구인 빌헬름에게 편지를 써 보내는 방식인데, 내용 대부분이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찬사로 차고 넘친다. 특히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화려한 미사여구는 없지만, 베르테르의 눈에서 사랑의 감정이 뚝뚝 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순간 사랑이 시작되었고 비극적 결말 역시 예정되었다. 결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 만나고 만 것이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매혹적인 정경이 눈앞에 전개되었다. 그녀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키의 몸매에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그녀는 청초하고 단정한 흰 옷을 걸치고, 팔과 가슴에도 연한 붉은빛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 빵을 손에 들고는, 자기를 에워싼 어린애들에게 제각기 나이와 식욕에 따라 한 조각씩 쪼개서 아주 다정스레 나눠주었다. 어린애들은 빵을 쪼개기도 전부터 고사리 같은 작은 손들을 높이 쳐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빵 조각을 받으면, 정말 천진난만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이하 생략)


 베르테르에게는 정신적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었고, 약혼자가 있던 로테 역시도 '사랑하는 베르테르 씨'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웠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베르테르는 절망했다. 처음 로테를 만났던 날 그녀가 달고 있던 붉은 리본마저 사랑하게 된 베르테르는 생일선물로 붉은 리본을 받고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뻐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에 있었던 것도 역시 이 붉은 리본이었다. 


 1774년 괴테가 25살의 나이로 집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 자신과 친구인 예루살렘의 경험을 토대로 쓴 소설이다. 약혼자가 있던 아가씨(샤로테 부프)를 사랑한 괴테, 유부녀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자살한 그의 친구 예루살렘, 두 사람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인 셈이다. <위대한 개츠비>가 출간되어 미국 젊은이들에게 '개츠비적인'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역시 출간되자마자 많은 독일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실연당한 청년들이 베르테르처럼 자살을 시도해 사회 문제가 되는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소설 한 편의 파급력과 당시 독일 사회를 관통하던 낭만적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괴테는 소설의 결말, 즉 베르테르의 자살에 대해 처음부터 숨길 생각이 생각이 없었다. 소설 초반부터 자살에 대한 복선은 수도 없이 등장한다. 사실 복선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베르테르는 자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언제나 확고하게 주장했다.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베르테르는 이 문제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을 펼친다. 알베르트는 자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이지만, 그의 주장에 반해 말에는 수많은 가시가 돋아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만큼 어리석을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기만 해도 나는 아주 불쾌해요. (중략) 자살이란 결국 나약함 때문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에요, 괴로움에 가득 찬 삶을 꿋꿋하게 참고 견디어나가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더 쉬우니까요."  


 이에 대해 베르테르는 언제나 '이성을 잃지 않는 자들'이라고 비꼬야 말한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항변한다. 


 "나는 자기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은 마치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인간의 천성이 얽히고설키며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갖가지 힘의 미궁으로부터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인간에게는 죽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요." 


 사랑의 절망 속에서 길을 잃은 베르테르는 마지막 결심을 하고 하인에게 심부름을 시켜 여행을 떠나는데 호신용으로 필요하다는 거짓말로 알베르트의 권총을 빌려오게 한다. 마침 로테와 한 방에 있던 알베르트는 아내에게 권총을 내주라고 하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지만 남편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하인에게 권총을 내어주게 된다. (실제로 예루살렘은 괴테가 사랑했던 아가씨의 약혼자 권총으로 자살했다.) 하인에게서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베르테르는 하늘의 뜻이라며 기뻐하며 기꺼이 생을 마감하고 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스무 살의 사랑 (우리는 그걸 종종 TTL 사랑이라고 불렀다.)을 떠오르게 한다. 오직 한 곳만 바라보고 나아갔던 순수한 열정의 시대이자 우리 모두 한 번쯤 경험했을, 하지만 영원히 다시 오지 못할 아름다운 시간을 회상하게 해 준다. 만일 그 시절의 여러분이 어땠었는지 궁금하다면, 그 감정의 소용돌이가 얼마나 나를 기쁘고 혹은 슬프게 만들었는지 기억해 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펼쳐보길 바란다. 그 안에 그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문학 작품 속 '자살'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현실에서 자살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부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생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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