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된 통통한 매력의 다섯째 외손녀
사는 게 바빠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외삼촌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학교 졸업하고 애 엄마 된 지가 언젠데 난데없이 숙제를 내주겠다고 했다. 곧 있으면 할머니 여든한 번째 생신인데 이를 기념해 할머니에 대한 각자의 기억이나 에피소드를 글로 써서 책으로 만들자고 했다. 가족 모두에게 각별한 할머니일 테지만, 나도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누구 못지않았다. 글 쓰는 건 자신 없었도 그러자고 답장을 보냈다. 막상 무언가 쓰려니 앞이 막막했다. 차일피일 미루는 게 일이었다. 아이 둘 엄마가 되니 좀처럼 시간적 여유도 생기지 않았다. 오늘은 꼭 써야지 작정해도 돌아서면 까먹었다. 막 태어난 둘째에게 손이 많이 갔다. 둘도 힘든데 할머니는 어떻게 여섯이나 키우셨을까? 외삼촌과의 약속, 아니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독하게 마음먹었다. 갓난쟁이를 안고 달래며 할머니와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어릴 적에는 주말마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초등학생이 혼자 걸어가기에 제법 먼 거리였으나 주말이면 자연스레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그 먼 거리를 어린아이 혼자 걸어왔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셨다. 칭찬받을 일을 했던가 싶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주말 내내 할머니 침대에서 빈둥대며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는 공부하라는 흔한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언제나 손주들로 북적대던 할머니 댁에서도 안방 침대는 언제나 내 차지였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어 운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특별히 할 일도 없으면서 늘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밥 먹고 침대에 누워 낮잠 자고 좋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보는 게 전부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텃밭을 가꾸셔서 새벽 일찍 일어나 따라나서기도 했지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어린 내가 투정 부리지 않고 혼자서도 잘 논다고 오히려 칭찬해 주셨다. 할머니는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바쁠 게 없는 느긋한 성격이 늘 불만이던 엄마 잔소리를 피해 할머니 댁에 갔던 것일지도 몰랐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할머니 칭찬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다.
특히 할머니는 복스럽게 먹는 내 모습을 많이 칭찬해 주셨다.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게 참 맛깔나게 먹는다고 했다. 할머니 밥상은 누가 보아도 어린아이가 좋아할 만한 반찬이 하나 없었다. 그래도 언제나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할머니가 반찬은 내 입에 잘 맞았다. 어린 나이에도 구수한 시골밥상이 정말 좋았다. 주말이면 할머니 댁에는 나를 포함해 예닐곱의 손주들로 항상 시끌벅적했다. 자식 둘을 낳아 길러보니 그 시절 할머니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겠구나, 좀 귀찮기도 했겠구나 싶었다. 우리 할머니에게는 나를 포함해 11명의 외손주, 2명의 손주, 5명의 증손주가 있다. 지금도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기어코 손수 밥상을 차려 내오신다. 귀찮은 내색은커녕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소복하게 담아주신다. 할머니를 사랑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존경스러웠다.
한 번은 할머니, 할아버지랑 시골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마냥 꼬맹이였던 내가 아궁이 앞에서 한참 불을 피우니 큰집 할머니가 뭐 이렇게 수더분한 아이가 다 있냐며 용돈을 쥐여주셨다. 할머니는 내가 소문난 구두쇠 지갑을 열게 했다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주셨다. 어린 시절 나는 말이 별로 없었다. 행동도 느릿느릿했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할머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언제나 예뻐해 주셨다.
할머니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예뻤던 나를 미스코리아에 내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틈만 나면 미스코리아처럼 걷기 연습도 시켰다. 할머니가 정말 그럴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 말을 듣고 있으면 어린 나도 왠지 우쭐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이 나라고 믿었다. 비록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현실을 바로 보게 되었지만, 통통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 모든 게 할머니 칭찬 덕분이었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려고 노력한다. 칭찬한다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칭찬은 자존감을 높여 준다.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해주는 마법 같은 힘을 가졌다. 할머니 칭찬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에게도 삶을,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할머니 칭찬은 무엇보다 소중한 삶의 지혜가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게 만들어 준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