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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Nov 14. 2020

독서 좋아하세요...

고전의 재味발견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토요일 아침마다 영등포로 수업을 들으러 간다. 운전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초행길에 차를 운전해 가는 건 월요일 아침, 그것도 한겨울, 운동장 조회에서 끝낼 기미가 보이지 않는 교장선생님 '훈화'만큼 끔찍이도 싫어해 차라리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집에서 당산역까지 가려면 집 앞에서 30분쯤 버스를 타고 먼저 서현역까지 가야 한다. 서현역에서 30분쯤 분당선을 타고 가다 선정릉역에서 9호선으로 또 한 번 갈아탄다. 김포공항행 급행열차를 타고 20분이면 당산역에 비로소 도착하게 된다. 길다면 긴 이 여정이 싫지만은 않다. '책'과 함께 하기에.


 좌석버스는 99퍼센트의 확률로 앉아가기 때문에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독서를 하면 멀미가 난다는 사람, 대표로 아내, 도 있지만 내게는 버스만큼 독서하기에 좋은 공간이 없다. 오랜 기간 출퇴근하며 단련했기 때문이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단 몇 권이라도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팔 할이 버스 덕분이었다. 그에 비해 지하철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고, 앉아 가는 경우도 드물어 독서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앉아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팟 캐스트나 음악을 듣는 이유다.  


 요즘은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버스 한 대에 한 명, 지하철 한 칸에 한 명 마치 누군가가 그렇게 하자고 정해 놓은 듯하다. 그래도 한 명은 꼭 있다. 물론 그 한 명이 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상하듯이 대부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e-book을 보는 분들도 꽤 많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사람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 그 책임을 전부 스마트폰에게 물을 수도 없다. 나도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도 하고 SNS도 한다. 텍스트를 읽고 사유하는 시대에서 콘텐츠를 보고 감상하는 시대로의 전환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다만 마지막 그 한 명이 두 명이 되지는 못할망정 '0'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가끔 넓은 지하철 안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으면 내가 시대에 뒤처진 사람인가 혹은 튀고 싶어서 그런 건가 나 자신에게 묻게 되곤 한다. 그럼 슬그머니 책을 가방에 넣고, 스마트폰을 꺼내 SNS를 뒤적거리게 된다. 지나친 피해의식일까 아니면 자기 검열?


 한 번은 책을 읽다 눈이 아파서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해 (아직 유선 이어폰을 사용한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분이 목적지에 다 왔는지 일어나고 방금 탄 사람이 운 좋게도 그 자리를 채웠다. 옆에 앉은 분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책에 집중했다. 문득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끄고 가방에서 다시 책을 꺼내 읽었다. 아직도 책을 읽는 사람이,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는 연대감을 공유하고 싶었다. 모두가 독서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도 살기에는 인생은 짧으니까. 다만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표현하며 살기를 바랄 뿐이다. 혼자 별의별 고민을 다하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었고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프랑스가 사랑한(동시에 아픈 손가락이기도 한) 작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 항변한 영원한 청춘의 상징,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드디어 읽었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은 도서 목록에 올려 두었는데 좀처럼 연(緣)이 닿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지내다 마침 동명의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인터넷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비로소 인(因)이 마련되었으니 때가 되었음이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대여하려고 검색했더니 드라마 때문인지 좀처럼 "대여 불가(대여중)"라는 상태 표시가 변하지 않은 채 몇 주가 흘렀다. 도서 예약 기능도 있었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예약하면 왠지 누군가가 충분한 독서 시간을 갖지 못하고 반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기다리기도 했다. 한 달 후가 지나고 나서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겨우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연애&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39살 폴과 그녀보다 아마도 열 살쯤은 연상인 로제,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25살 시몽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뻔한 삼각관계를 뻔하지 않게, 경쾌하게 풀어냈다. 폴은 여주인공, 로제는 그의 남자 친구 이름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심지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폴이 남자 이름, 로제가 여자 이름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애를 먹었다. 고정관념이 그렇게 무섭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위대한 첫 문장'은 주인공 폴의 심리상태를 묘사한다. 언뜻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이 문장은 작품을 완독하고 난 후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졸고(拙稿)나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미 세상에 선을 보인 작품들이 첫 문장을 어떻게 쓰는지 관심 가지고 지켜보는 편이다. 특히 고전의 경우에는 각별한 관심이 있다. 어떤 작품은 짧고 강렬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공간적, 시대적 배경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또 어떤 작품은 인물에 대한, 사건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그렇게 첫 문장에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애정이, 때론 애증이 가득 차 있다.  


 "폴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경우 흔히 갖게 마련인 신랄함이나 당혹감이 아니라 조심성에 가까운 차분함을 가지고, 좌절로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서른아홉 해로 나누어 보았다." 


 폴은 사랑하는 남자 로제에게 정착하고 싶어 하지만 로제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폴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마음 한 구석이 늘 불안한 폴 앞에 잘 생긴 청년 시몽이 나타나고, 노골적으로 그녀에게 애정 공세를 펼친다. 폴은 로제와의 사랑을 지켜내고 싶어 한다. 앳된 청년과 불장난 같은 사랑을 할 나이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기도 하면서. 하지만 폴은 시몽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편지와 함께 콘서트 티켓을 받고, 그녀는 앨범에서 브람스의 콘체르트를 찾아 듣게 된다. 그리고 문득 잊고 살던 중요한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그녀의 삶과 행복이 타인에 의해 결정되고, 정작 그녀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폴은 시몽의 초대에 응해 함께 브람스 콘서트에 가게 되고 결국 연인 사이가 된다. (마침 로제가 바람피운 사실을 들키기도 했고) 폴과 시몽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시몽은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자신을 태워 폴을 사랑한다. 하지만 폴은 여전히 불안해한다. 로제와 이별한 것이 그리고 열네 살이나 어린 '미치도록' 잘생긴 남자와 사귐으로써 신경 써야 하는 주위의 시선이... 결국 폴은 시몽을 떠나보낸다. 자기가 돌아가야 할 곳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이 불완전한 곳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이별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시몽을 부러워한다. 


 그는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중간쯤에서 몸을 휘청하더니 그녀를 향해 일그러진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한 번 더 그를 품에 안고 그의 슬픔을 받쳐 주었다. 이제까지 그의 행복을 받쳐 주었던 것처럼. 그녀는 자신은 결코 느낄 수 없을 듯한 아름다운 고통, 아름다운 슬픔, 그토록 격렬한 슬픔을 느끼는 그가 부러웠다. 


 작품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그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행복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마지막 문장을 보면 적어도 폴이 어떤 감정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폴은 뜨거운 여름 낮잠을 자고 이제 막 깨어난 기분이 아닐까? 마지막 문장이 궁금한 분들은 직접 찾아서 읽어 보시면 좋겠다. 


 버스를 타고 가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옆에 앉은 사람이 독서하고 있으면 '독서 좋아하세요?'라고 물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저도 독서 좋아합니다'라고 답하며 지금은 흔하지 않은 '각별한 기호 또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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