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Dec 08. 2020

장편소설 분량만큼 쓸 수 있을까?   

나의 첫 장편소설 도전기 

 2020년 6월 29일 월요일.

 가슴속에 품고 있던 계획 하나를 실천하기로 했다. 

 청소년 장편소설 쓰기! 


 그동안 <브런치>에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거나, '글쓰기'가 취미인 분들과 함께 짧은 단편소설을 쓰고 엮어 책으로 만든 경험이 있었다. 쓰고 또 쓰면 없는 재능도 생기겠지 하는 바람으로 열심히 썼다. (아직까지 재능은 1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하루는 독서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권의 책이 될 만큼의 분량을 쓸 수 있을까?'


 재미와 감동이 있는 글,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창(窓)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쓰는 것이 평생의 목표이지만, 우선 책 한 권 분량의 길이만큼 텍스트를 '많이', '계속', '끝까지' 내가 정말 쓸 수 있을지 궁금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라고 말 나온 김에 시작했다.  


 처음 세운 목표는 간단했다. 

 - A4 100장 (글자 크기 10, 줄 간격 160 / 아래한글 기준) 

 - 200자 원고지 700매 이상

 창작과 비평이나 민음사의 청소년 장편소설 응모 요강에 나와 있는 원고 분량이 보통 원고지 700매 내외였다. (만약) 탈고 후 나 자신이 독자가 되어 만족할 만한 글이 태어나면 공모에 참여하리라는 큰 뜻을 품어 응모 요강을 준수키로 했다. 청소년 소설로 범위를 정한 건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림책 작가'의 꿈도 그렇거니와 요맘때 아이들과 한창 여러 권의 청소년 소설을 읽다 보니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6월 29일에 시작한 글쓰기는 10월 22일에 1차로 끝맺음을 했다. 분량을 컴퓨터로 확인해 보니 A4 97장, 200자 원고지 기준 811 매였다. 결말 부분에 해당하는 마지막 10장을 쓸 때는 집중력이 떨어져 나 조차도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장 소홀히 다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처음 글쓰기에서는 완벽함보다는 단계별로 이야기의 얼개를 잡아가는데 의의를 두기로 했기 때문에 결말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은 퇴고로 잠시 미루기로 했다. 

 사실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8월 중순 경에 지금까지 썼던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손봤다. 아무리 이야기의 얼개를 구성하는 단계라고 해도 사건이나 인물의 개연성(핍진성)과 연관성이 떨어지면 퇴고 단계에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할 우려가 있었다. 작가(저자) 경험은 없지만, 독자 경험은 많기에 지금까지 쓴 글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읽어 보았다. 재미도 없고 별로였다. 응급처치가 필요했다.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차로 완성한 글을 약 3주 정도 멀리했다. 아예 해당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았다. 내가 쓴 글을 계속 읽다 보니 비슷한 표현이 계속 반복되었다. 일관성과는 좀 다른 문제였다. 문장을 표현하는 방법이 어떤 경계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에는 그동안 가까이하지 못했던 고전도 읽고, 신작 소설도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은 메모해 두기도 하고 몇 번씩 읊조려 보기도 했다. 이미 세상에 나온 멋진 문장들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마냥 부러웠다.  


 1차 퇴고는 11월 14일부터 12월 7일까지 진행했다. 1차 퇴고의 목적은 전체적으로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었다. 첫 글쓰기 과정이 밑그림을 그린 것이라면 1차 퇴고는 색을 칠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하지만 밑그림부터 다시 그려야만 했다. 글 쓰기를 시작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나름 나만의 문체가 생겼다. 당연히 문체는 후반부에 뚜렷하고, 전반부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후반부의 색채에 맞춰 전반부를 다시 그려야 했다. 유화를 여러 번 덧칠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던 결말 부분은 거의 새로 썼다. 다 쓰고 나면 '내가 이렇게 쓰려고 했었나?' 자꾸 질문이 생겼다. 계속 쓰다 보니 글이 생명력을 가지고 스스로 써지기도 했다. 경계해야 할 상황이었다. 초심자인 나에게는 항상 엉뚱한 길이나 후미진 골목 안쪽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전문적으로 교정/교열을 배우지 않았지만 가능한 비문과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도 고쳐 쓰려고 노력했다. 아래 한글 기능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지만, 컴퓨터로 작성하다 보니 입력된 맞춤법과 어긋난 문장에는 자꾸 빨간 줄이 그어졌다. 시적 허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설적 허용이나 방언, 구문을 써야 하는 경우도 생겼는데 그때마다 빨간 줄이 그어져 신경이 쓰였다. '이건 내가 쓰는 게 아니라 아래 한글이 쓰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할 때는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Speller)'를 이용하기도 했다. 


 1차 퇴고를 끝내니 글의 분량이 늘었다. A4 111장, 200자 원고지 937 매였다. 어떤 부분은 보충이 필요했고, 어떤 부분은 과하다 싶었다. 그래도 더 쓰기는 쉬웠지만 지우기는 어려웠다. 나름 고생하며 쓴 글을 마우스로 블락을 지정해 'Del' 키 하나로 날려버리려니 안타까웠다. 혹시 나중에 써먹지 않을까 해서 뒤로 옮겨 두었다가 결국 마지막에 삭제했다. 글쓰기 관련 책들을 보면 일단 많이 쓰고, 퇴고 과정에서 과감하게 줄이라는 말을 하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내 새끼들'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단어 하나를 찾아내려고 얼마나 고민했는가를 떠올려보면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퇴고'란 고치고 다듬는 일이니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을 넘기는 것이 초심자인 내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일지도 모르겠다. 


 퇴고는 총 세 차례 진행 예정이다. 이제 한 번 끝났으니 두 번 남았다. 글을 쓰면서 '작가 노트'를 만들어 이야기에 관한 내용을 계속 메모했다. 까뮈의 소설을 읽다 보니 작가 노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차 퇴고를 할 때는 질문을 많이 썼다. 복선을 깔아 넣고 혹시 사용하지 않았거나, 반대로 복선이나 암시 없이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하는 소재나 사건은 없는지 확인했다. 2차 퇴고 시에 중점을 두고 확인할 사항을 정리했다. 3차 퇴고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현재로선 2차 퇴고를 해봐야 알 것 같다. 


  내 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처음 목표한 바대로 100장의 분량을 썼으니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컴퓨터 하드에 0과 1로 이루어진 수많은 파일들 중 하나로 운이 다할지도 모른다. 물론 3차 퇴고가 끝나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작품이라고 인정하면 공모전에 참가하는 것이 다음 지향점이기는 하다. 단, 조건이 있다. 동거하는 냉혹한 독자들 (아내, 준과 Q)에게 서평 리뷰를 받고 좋은 평점을 받아야 한다. 어떤 꼼수도 통하지 않는 냉혹한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고치고, 다시 쓸 수밖에 없다. 


 나도 내 글이 어떻게 완성될지 무척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독서 좋아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