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Prologue) : '서삼독'과 '처음처럼'
브런치 연재 아이디어를 몇 가지 구상해 놓았다.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려고 일부러 작은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곤 했더니 어느새 예닐곱 가지를 넘겼다. 정작 브런치에는 글도 올리지 못하면서...
큰 마음먹고 수첩 맨 위에 써 놓았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보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림책 소개'이고, 복잡하게 말하면 '어른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그림책'에 관한 에세이다.
처음 염두에 두었던 제목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나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은 그림책' 그리고 '어른을 위한 힐링 그림책' 정도였다. 인정한다. '구독'과 '좋아요'를 위한 포석이었다. 브런치 편집팀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브런치 알고리즘이 선택할만한 제목이라고 혼자서(만) 기뻐했다. 그러다 우연히 신영복 선생님의 '서삼독(書三讀)'이라는 짧은 글을 읽었다. (신영복의 언약에서 인용)
책은 반드시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필자는 당대의 사회 역사적 토대에
발 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서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필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脫走)입니다.
진정한 독서는 삼독입니다.
신영복 선생님 책은 오래전 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읽는 <강의>가 전부이지만, 시대를 정직하게 품은 어른이자 스승으로서 선생님의 가르침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서삼독'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브런치(매거진)에 연재할 제목도 '세 번 읽는 그림책'으로 바꾸었다. 선생님처럼 울림을 줄만한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름만 빌려온 셈이다. 그럼에도 굳이 의미를 내세우자면, 그저 아이와 함께 한 번, 아이 혼자 한 번, 나(부모, 어른) 혼자 한 번 이렇게 세 번 읽을 만한 그림책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다.
아내는 아이 둘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한참을 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한두 권이 아니었다. 적게는 대여섯 권이고 많게는 열 권이 넘었다. 야근하고 늦은 밤 귀가한 집에서 책 속에 파묻혀 잠든 아이들을 보면 어찌나 귀엽던지 볼을 한 번씩 꽉 깨물어 주었다. 그렇게 쌓인 그림책이 여전히 아이들 공부방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하루는 몇 권이나 될지 궁금해서 세어보았더니 어림잡아 1,200권 정도 되었다. 조카가 결혼해 아이를 낳아 3~400권 정도 보냈는데도 여전히 많다. 그 모든 책을 직접 읽고 선별한 아내는 그림책 전문가다. 요즘에도 그림책을 자주 사는데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도 좋은 그림책이 꽤 많았다. 그 그림책들을 나눠보자, 소개해보자는 마음으로 '세 번 읽는 그림책'은 시작되었다.
나도 (1년에 며칠 안 되지만) 일찍 퇴근하는 날이나 주말에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곤 했다. 큰 아이가 좋아하는 책,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달랐다.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어 달라고 티격태격했다. 그런가 하면 책을 읽어 주다 너무 졸려서 고수들만 할 수 있다는 '두 페이지 넘기기'를 시전 하다 들켜 아이들에게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물론 아이도 나도 그림책에 푹 빠져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도 있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그림책은 말할 것도 없다. 세상에 나쁜 그림책은 없다. 우리 국민의 절반이 1년에 책 한 권을 읽지 않는다는 통계청 자료를 뉴스를 통해 접했다. 충격적이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책을 읽지 않는 게 메가 트렌드가 되어 버렸다. 그림책을 '그저 아이들이 읽는 책' 정도로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일상에 쫓기는 어른들에게 독서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세 번 읽는 그림책' 연재를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세 번 읽는 그림책'의 기획 의도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책이 소개된다면, 그건 오롯이 내 잘못이다. 잘못이라기보다는 '한계'라고 해두는 게 좋을 듯하다. 가능하면 앞으로 소개할 그림책은 집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읽은 작품으로만 진행하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토록 많은 그림책 중 극히 일부이기에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새로운 브런치 연재를 시작하면서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을 다시 읽어 보았다. 처음 그 마음이 그대로 이어져 가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해 보며...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