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소설) 너와 나의 연애소설
덜덜거리며 후덥지근한 바람을 토해내는 선풍기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아무리 시골 다방이라지만 요즘에도 저런 선풍기가 남아 있던가 준규는 잠깐 감탄했다. 공장에서 막 태어났을 때 온몸을 휘감던 순백의 색감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의 무게에 짓눌린 탓인지 온몸이 누렇게 멍들었다. 아직 돌아가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테이블 위 싸구려 크리스털 재떨이에는 담배꽁초 서너 개가 누군가의 손가락에 압살당한 채 애처롭게 널브러져 있었다. 구부러진 틈 사이로 훤히 제 속을 드러낸 담배꽁초에 초조함, 분노 그리고 슬픔이 서렸다. 마지막 한 모금의 희열을 주인에게 남긴 담배 개비는 무참하게 짓밟힐 자신의 운명을 상상이나 했을까? 준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낡은 선풍기나 담배꽁초 따위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에게 일생일대의 순간이 오고 있었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이별 통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했다. 약속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곧 그녀가 도착할 터였다. 첫사랑이자 영원한 사랑이라 믿었던 지민에게 뜻밖의 이별을 통보받은 준규가 한 말은 그저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찾아야 할지 모른 채 지난 3일 동안 무한한 우주에 닿을 만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단 하나의 단어도 발견하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그는 무엇을 찾아야 할지도 몰랐다. 연애소설이나 영화의 이별 장면에서 본 듯한 몇 마디 뻔한 말이 떠올랐지만, 그마저도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가는 탓에 망각의 강 아래로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다. 찰그랑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밝은 햇살이 열린 문을 비집고 먼저 들어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삐딱하게 열린 문 사이로 그녀가 보였다.
“왔어? 앉아.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아니요. 저도 오랜만에 강촌 와 보고 싶었어요.”
“이 다방 기억나? 우리 연합 MT 왔을 때 네가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는데?”
“연합 MT 아니에요, 농활이죠.”
“그랬나? 참, 주문하자. 뭐 마실래?”
냉커피가 가득 담긴 투명한 유리잔 표면에서 물방울 하나가 흰 실로 뜬 투박한 컵받침을 향해 또르르 굴러갔다. 수직으로 하락하던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을 만나 와락 껴안더니 더 큰 하나가 되어 바닥에 닿았다. 준규도 이미 살면서 수도 없이 봐왔던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명징한 물방울을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굴러가는 물방울이 지면에 닿기 전에 정지하고 싶었다. 말을 잃은 그에게 가끔 찾아오는 강박이었다. 컵받침은 벌써 흥건히 젖었고 테이블 위에도 강줄기가 흘렀다. 냉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인 지 30여 분이 지났지만, 두 사람 모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서로 고개만 푹 숙인 채 지루한 침묵만이 아우성쳤다. 시골 다방 안 팽팽한 공기의 균열을 깨고 지민이 입을 열었다. 용기를 내는 건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다.
“오빠, 이거요. 조관우 새 앨범.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잖아요.”
“응? 어…. 고마워. 난 아무것도 준비 못 했는데….”
“그냥 터미널에서 버스 기다리다 눈에 띄어 샀어요. 새 앨범이 나왔더라고요.”
지민이 내민 카세트테이프는 붉은색 장미꽃이 반복되어 인쇄된 종이 포장지에 예쁘게 싸여 있었다. 조관우 새 앨범이라면 3집 ‘영원’ 일 터였다. 발매된 지 두 주나 지났는데 매번 사지 못하는 이유가 생겼다. 꼭 갖고 싶은 앨범이긴 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받고 싶지는 않았다. 헤어지자고, 그만 만나자고 이별을 통보한 사람이 조관우 신곡 앨범을 선물하다니, 준규는 이 상황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우리 진짜 헤어지는 거야?”
“네.”
“왜?”
“….”
“내가 더 잘할게.”
“미안해요.”
지민이 울었다. 준규도 울고 싶었지만, 그전에 이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별을 통보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지민이었다. 그는 지민과의 이별을 상상 속에서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가 그려놓은 미래에는 언제나 두 사람이 함께했다. 책에서 사랑을 배운 그에게 살아 있는 감정으로서,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의 존재로서 사랑을 깨닫게 해 준 그녀와 평생토록 함께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헤어지자고 일방적인 통보를 한 장본인이 아무런 설명 없이 울기만 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지난 며칠간 준규는 공부는커녕 밥 한술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적어도 오늘 지민과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듣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한 말은 미안하다는 게 전부였다. 이별을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언제나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했던, 너무 직선적이라 그를 당황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닌, 평소의 그녀와는 너무나 달랐다. 짙은 침묵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던 얼음 두 개가 찰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평소라면 듣지 못할 아주 작은 소리에도 준규의 귀는 반응했다. 그는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지민의 표정, 말투, 손짓 하나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이 순간 그녀를 표현하는 건 눈물이 전부였으나, 눈물방울에서는 아무것 찾지 못했다. 그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이 이유 없이 찾아왔듯이, 이별도 이유 없이 찾아온 것이리라 계속 자신을 설득했다. 이런 답이라도 내놓지 않는다면 지민과 죽어도 헤어지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꾸 원점으로만 돌아올 테니….
“마지막 기회 따위는 없는 거지?”
“….”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는 못 보게 될지도 몰라. 이제 졸업이잖아.”
“….”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미안해요.”
“난 모르겠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만 괴롭힐게. 먼저 일어나. 난 잠깐 앉아 있다 갈게. 잘 가.”
밝은 햇살 사이에서 나타났던 그녀가 다시 햇살 안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삶에서 그녀가 증발했다. 준규는 커피가 가득 담긴 잔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현듯 질량 보존의 법칙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많던 얼음이 녹아 사라졌는데도 유리잔은 넘치지 않았다. 분명히 넘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는데도 혹시 넘치지 않을까 기대했더랬다. 커피가 넘쳐버리면, 그래서 작은 소동이라도 벌어지면 그녀를 조금 더 붙잡아 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자연법칙은 잔혹하리만치 정확했다. 지민을 향한 사랑의 총량은 이별 후에도 단 1g도 줄지 않을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이별이 실감 나지 않는 걸까? 준규는 울지 않았다. 아니, 울 수 없었다. 마치 지금이라도 그녀가 다시 뛰어 들어와 ‘놀랐지, 장난이냐!’ 할 것 같았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지만, 행복한 상상은 현실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다. 이번에는 이별이 현실이었다.
준규는 그녀가 준 마지막 선물을 주머니에 넣고 다방을 나왔다. 늦가을 오후 하늘은 한없이 맑고 투명했다. 유난히 따스한 햇볕이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고개 들어 하늘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 눈이 부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 순간 눈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이상하리만치 담담했는데 지금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햇살이 너무 밝았다. 토할 듯이 어지러웠다. 그의 우주는 방금 산산이 조각났는데 지구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너무 평화로웠다. 그녀 없이 살아가게 될까? 그럴 수 있을까? 이제야 준규는 지민의 눈물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