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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Feb 24. 2021

'인류세'를 아시나요?

기후변화-기후위기-인류세 담론 

어린 시절 '슈퍼맨'이 장래희망이었던 탓에 SF·초능력 영화는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한때 미드 'HEROS'에 열광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세계 도처(주로 미국)에서 일식을 계기로 초능력이 생긴 일군의 인간이 등장하고, 그들은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모여든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연을 맺는지가 드라마의 감상 포인트 중 하나인데,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We are all connected'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초능력자들은 과거의 한 시점에서부터 서로 연결되었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관계들을 풀어나가면 모두 하나의 출발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건 초능력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다. 


""지구의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 


2002년 사스(SARS)를 시작으로 2009년 신종플루, 2012년 메르스(MERS), 그리고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COVID 19)까지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출현은 모두 야생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전이된 것으로 추정된다. (확정이 아니라 추정이다, 현재까지는)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자 이들 몸을 숙주로 삼던 바이러스들이 밀집 생활을 하는 인간이나 가축의 몸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과학적 검증이 끝나지 않은 가설일 뿐이지만, 개연성이 매우 높은 가설임은 부인하기 힘들다. 


누군가는 또 '기후변화' 이야기야? 무슨 사건, 사고만 생기면 모든 원인을 기후변화로 전가한다고 피로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기후변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오히려 '기후변화'라는 말에서 풍기는 가치중립적인 뉘앙스 때문에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기후위기기후재난으로 용어를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 남의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는 경향도 물론 강하다.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데도 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18년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 평균온도 억제를 '2℃아래'로 정한 파리협정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고 밝혔다. 2℃와 1.5℃ 차이가 가져올 미래는 엄청난 차이가 예상된다고 한다. 서로 평행해야 할 활주로가 0.1도만 기울어져도 항공사고 발생 확률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것과 같다. 0.5℃ 차이가 미래 세대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른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 결석 시위를 벌이며 기성세대와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건 이것이 그들의 '생존'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위기 또는 재난)를 포함해 현재 전 지구적 생태계 재난 상황의 책임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인류세(Anthropocene) 담론이다. 1980년대에 등장한 인류세라는 용어를 대중에게 인식시키게 된 계기는 2000년 무렵 시작된 네덜란드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의 활동 덕분이었다. 그는 2009년 '인류세 워킹 그룹 (AWG)'을 출범해 인류세 담론을 전 지구적 이슈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지구의 역사를 나타내는 지질시대 구분법에 따르면 현재는 신생대(Cenozoic era) 제4기에 속하는 홀로세(Holocene)다. 공룡 시대였던 중생대가 약 1억 8천만 년, 그 이전인 고생대가 약 3억 3천만 년인 것과 비교할 때 신생대는 고작 6600만 년 지났을 뿐이다. 거기에서도 제4기는 258만 년 전에 시작되어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1만 년 전부터 비로소 홀로세에 돌입했다. 지질 연대 구분을 결정하는 국제층서위원회(ICS)와 국제지질학연합회(IUGS)은 인류세를 공식 인정하고 있지 않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층서학에서 1만 년이라는 시기는 매우 짧기에 홀로세를 일찍 마감하는 두려움도 한 몫했다.                


사실 인류세를 어느 시점에서 시작한 것인가를 두고 논의가 진행 중이다. 증기엔진이 발명된 산업혁명 시점(1780년경)으로 간주하자는 의견, 농업 활동이 활발해진 신석기 약 12,000년 전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 활동이 토지 이용이나 생태계 혹은 생물다양성 등에 영향을 미치고 생물종의 절멸 등을 야기하는 시점인 14,000~15,000년 전으로 규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인류가 지질층에 영구적으로 남기게 된 흔적들 대부분이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데 있다. 대규모 농업과 공업, 각종 건설 공사 등을 통해 엄청난 퇴적층이 사라졌는데 이는 자연이 가진 침식력보다 10배 이상 파급력이 크다. 대기층에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문제 이외에도 지구 곳곳에서 진행한 핵실험의 결과로 10만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방사성 동위원소의 흔적을 남겼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지구 전체에서 방사능 물질의 누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화석연료가 연소되면서 나온 검댕들은 히말라야부터 남극에서까지 발견되며, 지층에는 영원히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쌓여간다. 지구온난화로 야기된 기후변화가 생태계를 교란해 종(種)의 멸종을 가속화한다. 인류가 남긴 흔적들이 지질층에까지 큰 변화를 남기게 되었으므로 홀로세와 구별되는 하나의 독립된 시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인류세인 것이다. 환경생태 위기가 '인간 활동의 결과'라고 특정함으로써 단순한 기후위기론보다 인간의 행동변화를 요구하는 실천적 의미가 강한 용어이다.  

<제주 현대미술관 2019 국제생태미술전 Ocean - New messengers>

인류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본세(Capitalocene)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호모 사피엔스종 전체의 문제로 만드는 인류세라는 용어 대신 문제를 책임져야 할 주체를 명시하자는 것이다. 현재 전 지구적 자연환경 파괴의 문제를 인류 전체에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며 이 위기의 주범인 '자본주의'에 면죄부를 줄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면 결국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미국이 파리협정을 2017년에 탈퇴하면서 현실화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파리협약 복귀였다.) 인류세라고 부르든, 자본세라고 부르든 기후위기 문제가 더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임을 자각해야 한다는데 있다. 변화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고 결과는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제주 현대미술관 2019 국제생태미술전 Ocean - New messengers>

얼마 전 브런치에 한 작가님이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에 관해서 쓴 글을 읽었다. 무척 공감 가는 글이었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캠페인)은 모든 제품이 재사용될 수 있도록 장려하고 폐기물 발생을 방지하는 활동이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모든 제품, 포장 및 자재를 태우지 않고, 환경이나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토지, 해양, 공기로 배출하지 않으며 책임 있는 생산, 소비, 재사용 및 회수를 통해 모든 자원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주말에만 재활용품을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아파트 단지만 하더라도 배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양이 어마어마하다. 우리 집도 한 몫함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동에서만 나오는 양이 이 정도면, 우리 아파트, 우리 동네, 우리나라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을지 상상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그것도 고작 일주일에! 제주 한달살이를 할 때 제주 현대미술관에서 '국제생태미술전 Ocean - New messengers'을 관람했다. 태평양에 접해 있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해양환경 실태를 예술을 통해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 전시였다. 해양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으로 아름다운 바다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고, 우리 바다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아 전시한 작품도 있었다. 아마 이때부터 해양환경오염이나 기후위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냥 '심각하네' 정도가 아니라 '뭔가 해야겠구나'라고 바뀐 순간이었다. 늦었지만 제로 웨이스트 운동에 참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꼭짓점에 있다. 슬기로운 지혜를 활용해 어떤 종(種)도 흉내 낼 수 없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제 멈출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지구는 모든 것을 내주었고, 다른 종들은 많은 걸 양보했다. 때론 절멸로 지구 상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도 코너에 몰렸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그 시작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이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다. 




이번 글은 계간지 창작과 비평 2020년 봄호에 실린 '기후위기 해결, 어디에서 시작할까'의 글을 참고 및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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