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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r 14. 2021

눈사태가 아니라  광사태라고요?

내궁내정(내가 궁금해서 내가 정리했다)

과학자가 아니어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과학 전문 주간지 Nature (네이처).


영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과학잡지로 미국과학진흥협회에서 발행하는 Science (사이언스)와 함께 세계 과학저널계의 쌍두마차로 불리며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다. 물리학, 의학, 생물학, 화화, 우주과학 등 과학 전반을 다루는데 매년 1,000여 편의 논문이 실린다. 과학자로서 네이처에 논문 한 편 싣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올 초에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연구가 네이처에 실렸다. 그것도 무려 표지 논문으로 게재되었다. 과학자도 아니고 과학계에 종사하지도 않는 나로서는 이 사건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가늠조차 수 없지만, 조금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내가 쓴 서평이 타임지에 실린 느낌 정도가 아닐까? 

<광사태 연구가 표지 논문으로 게재된 네이처 1월 14일 발행본>

논문 자체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무~~~척 어렵다. 그래도 조금 참고 살펴보면 아주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감 정도는 잡을 수 있을 듯했다. 독자분들과도 나눌만한 고급 정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내궁내정' (내가 궁금해서 내가 정리했다) 했다. (자료는 연구자가 소속된 한국화화연구원의 보도자료와 네이처를 참고했다.)


논문 제목이 '광사태 나노입자로부터의 거대 비선형 광학 반응(Giant Nonlinear Optical Responses from Photon-Avalanching Nanoparticles)'이다. 이 짧은 제목에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사실 '반응'뿐이다. 우선 '광사태'라는 말이 너무 낯설다. '사태'는 눈사태나 산사태와 같이 어떤 일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계속 커져가는 걸 의미한다. '광사태'란 작은 에너지의 빛을 약한 세기로 쪼여도 빛이 물질 내부에서 연쇄적으로 증폭 반응을 일으켜 더 큰 에너지의 빛을 강한 세기로 방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연구팀이 이 현상을 발견했을 때 눈사태를 떠올리며 광사태(Photon Avalanching)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반인의 상식에서 생각하면, 어떤 물질이 빛 에너지를 흡수하면 일부는 열에너지로 소모하고, 나머지를 처음 흡수한 빛보다 작은 에너지의 빛으로 내보내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연구팀이 일부 원소의 나노물질에서 '작은 에너지의 빛을 흡수해서 더 큰 에너지의 빛을 방출'하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겼던 에너지 법칙을 철저하게 거스르는 새로운 발견이다. (그래서 과학은 늘 현재 진행형인가 보다) 통상 이런 상향 변환 나노 물질의 광변환 효율(들어간 빛의 양 대비 나온 빛의 양)은 1%대로 매우 저조해 상용화되지 못했다. 이 어려운 걸 우리나라 한국화학연구원 연구팀이 해냈다. 연구팀이 발견한 광사태 나노입자는 광변환 효율을 기존 상향 변환 나노물질보다 40%까지 높일 수 있다.

<툴륨 이온(Tm3+)이 도핑된 나노입자 내부에서의 빛의 광사태 연쇄 증폭반응의 메커니즘>

한국화학연구원 서영덕, 남상환 박사 연구팀이 미국/폴란드 연구팀과 공동 연구로 ‘툴륨(Tm)’이라는 원소를 특정한 원자격자 구조를 가진 나노입자로 합성했다. 바로 이 특별한 나노입자 덕분에 작은 에너지의 빛을 약한 세기로 쪼여도 빛이 물질 내부에서 연쇄적으로 증폭 반응을 일으켜 더 큰 에너지의 빛을 강한 세기로 방출하는 것이다. 광사태 나노입자에 레이저 포인터 수준의 빛만 쪼여줘도 매우 강한 세기의 빛을 방출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현상의 발견을 통해 빛으로 보기 힘든 25nm 크기의 물질을 높은 해상도로 관측했다. 빛으로 볼 수 있는 물질의 해상도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가시광선 파장인 400nm~700nm 이하 크기의 물질은 고해상도로 보기가 매우 어렵다. 400nm 이하의 크기도 빛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광학 분야를 초고해상도 나노스코피 이미징이라고 한다. 이 분야는 201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분야이기도 하다. 연구팀은 광사태 나노입자로 더욱 간단하게 초고해상도 나노스코피 이미징을 구현했다. * nm은 나노미터(nanometre)로 10의 마이너스 9 제곱이다. 


향후 연구팀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부도체·반도체·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보이는 특별한 구조의 물질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저렴하고 간단하게 제조할 수 있어 차세대 태양전지로 각광받고 있다.) 연구팀과 전지의 효율을 높이는 응용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다. 광사태 나노입자는 기존 전지가 흡수·활용할 수 있는 빛의 영역보다 더 긴 파장의 빛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전지의 효율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는 현재 태양 에너지 활용 기술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지금까지 내 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과학 논문을 살펴본 이유도 바로 이점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주범 중 하나인 '화학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고, 그린 에너지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태양 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상용화까지 많은 연구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구팀에 의해 태양광을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다. 글루미 선데이에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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