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소설
“티파니,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널 지지한단다. 마크도 그럴 거야. 그렇죠, 여보?”
“오, 물론이지 챈. 티파니는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소중한 아이인걸!”
“제가 꼭 두 분 중에 한 분을 선택해야 하나요?”
“그렇단다, 얘야. 너에게 다른 선택권을 주고 싶지만, 세계 정부 규정에 따라야 하거든. 너도 이제 세계 시민이 되는 거란다.”
“이런 결정을 하기엔 전 아직 어리다고요!”
티파니 목소리에서 신경질적인 쇳소리가 묻어났다. 세로토닌 과다 분비가 감지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10대 여자아이에게서 흔하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티파니가 이온 워터 한 병을 송두리째 비우는 동안 마크와 챈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도 티파니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이해했다. 아주 오래전 그들 역시 그랬으니까.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시간을 계속 끄는 건 티파니에게도 좋지 않았다. 오염된 지구는 순수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전(前) 인류의 마지막 소녀가 어떤 선택을 할지 신(新) 인류 모두 그녀를 주목했다. 각종 매체에서 매일 그녀의 이야기를 특집으로 다뤘다.
세계 인구가 120억 명을 넘어서자 식량 문제, 주거 문제, 경제적 양극화는 국가 단위 통제를 벗어났다. 기후변화는 기후재앙이 되어 인류를 덮쳤다.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의 30퍼센트가 사라졌고. 그 바다 위에는 자본의 욕망인 플라스틱으로 가득했다. 강대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차례로 붕괴되고 폭동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전 세계 부를 움켜쥐고 있던 다국적 테크 기업들이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세계 정부 설립과 함께 신(新) 인류 계획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모두가 헛소리라고 비웃었지만,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돈을 가졌다. 이미 인간 수준 AI를 구현한 그들은 초지능 AI를 탄생시키기에 이르렀고 ‘프로메테우스’라 불리는 초지능적 존재가 신 인류 계획을 수행했다. 그 모든 게 프로메테우스의 독단적인 결정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신 인류 계획으로 출산은 금지되었다.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인간의 육체와 유사한 안드로이드에 자신의 뇌를 업로드하거나 육체를 버리고 메타 버스 안에서 의식을 지닌 디지털 존재로 살아가거나 그대로 늙어 죽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생의 삶을 선택했다. 늙어 죽기를 선택한 것은 극소수의 향수병에 시달리던 노인들뿐이었다. 마크는 최초의 안드로이드, 챈은 최초의 메타 버스 속 의식 있는 아바타였다. 둘은 신 인류 계획의 집행관이 되었다. 티파니는 지구 상에 남은 육체를 가진 마지막 인간이었다. 이온 워터 한 병을 다 비우고도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결정했어요. 전 인간으로 남겠어요.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걸 몸으로 느끼면서 살래요. 간지럽다는 느낌도 아프다는 느낌도 괜찮아요. 슬플 땐 울고 기쁠 땐 웃고 화날 땐 죽어라 뛰고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격렬함도 느끼고 싶어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래요. 제가 좋아하는 걸 계속하려면 지금 이대로가 좋겠어요. 이제 됐죠? 전 인공 고기로 만든 햄버거나 먹으러 갈래요. 지금 막 배가 고파졌거든요."
사춘기 소녀의 돌발 행동에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를 지켜보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