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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8. 2019

엉뚱한 엉또폭포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큐는 왼손잡이다. 내가 왼손 잡이니까 내 유전자의 영향 탓일 게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왼손을 쓰지 못하게 했다. 옛날 얘기다.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했으니 왼손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나는 어렸을 때라 내 경우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큐를 보면 왼손잡이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씨를 쓰거나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거나 읽는다. 지금도 종종 그럴 때가 있다. 수박이라는 단어를 박수라는 단어로 읽는 셈이다. 큐는 뇌가 시키는 대로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일 텐데 세상이 큐를 엉뚱하다고 한다. 큐로서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제주에서 비가 오면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조금 엉뚱한 엉또폭포이다. 폭포라면 시원한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데, 맑은 날에는 폭포수를 볼 수 없다. 졸졸졸이라도 흐르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아예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엉뚱해서 엉또폭포라고 이름 붙은 것은 아니다. ‘엉’은 웅덩이, ‘또’는 입구를 가리킨다. 웅덩이 입구라는 의미이다. 올레 7-1코스에 속해 있는 비밀의 폭포로 아는 사람만 볼 수 있는 폭포이다. 전날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엉또폭포로 향했다.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경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마블 영화에 나온 와칸다 같았다. 기암절벽과 조화를 이룬 천연 난대림이 여지없이 영화 속 배경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 이 날도 폭포에는 물 한 방이 떨어지지 않았다. 200mm 이상 비가 내려야 폭포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어디는 100mm, 어디는 300mm라고 되어 있는데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비가 억수 같이 내리던 날 우리는 엉또폭포를 다시 찾았다. 이 정도 비면 평소에는 절대 외출하지 않을 날씨였지만 엉또폭포의 폭포수를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콸콸 쏟아지는 폭포수를 보았다. 50m에 달하는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말 그대로 장관을 이루었다. 비를 뚫고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지금 나는 양손을 모두 쓴다.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왼손잡이로 사는 일은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불편한 것 투성이다. 나는 적응해서 살고 있지만 앞으로 큐가 살아갈 세상은 왼손잡이 그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에 맞추어 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조금 엉뚱한 아이로, 엉뚱한 아빠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엉뚱하다는 것은 비범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니까. 비 오는 날의 엉또폭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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