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ssword

한뼘소설

by 조이홍

J의 호흡이 가빠졌다.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두 배는 빨라진 것 같았다. 얼마나 눈을 심하게 깜빡거렸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곤두섰다. 왼쪽 엄지 손가락은 얼마나 물어뜯었는지 손톱 끝에 피멍이 들었다. 마침 등 뒤로 굵은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다시 한번 심호흡하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자판 위에 올린 두 손은 여전히 떨렸다. 프로그래머가 직업인 그는 1분에 수 백개 단어를 오타 없이 타이핑했다. 그런 그가 실수하지 않으려고 검지 손가락 하나씩만 곧게 폈다. 이제 기회는 두 번밖에 남지 않았다. 한 글자씩 천천히 자판을 두드렸다.


L.o.n.d.o.n.B.r.i.d.g.e.1.9.7.3.^.^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엔터키를 눌렀다. 모니터에 유효하지 않은 패스워드라는 에러 메시지가 또다시 보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J가 중학교 때부터 각종 계정에 공통으로 사용한 패스워드였다. 다른 패스워드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더랬다. 가상화폐를 보관하는 디지털 지갑에만 다른 패스워드를 적용할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대소문자를 바꿔가면 아홉 번이나 시도했는데 일치하지 않는 패스워드라는 망할 놈의 에러 메시지만 약 올리듯 모니터를 채웠다. 세상이 있는 모든 욕을 동원해 자신과 자신의 하찮은 기억력에 퍼부어 댔다. 차라리 망각이라는 축복 속에 내던져진 채 모르고 사는 게 마음 편했다. 왜 하필 집안 대청소를 해서 15년도 넘은 노트북을 발견한 자신을 저주했다.


아무튼, 이제 기회는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를 날려 버리면 디지털 지갑은 자동으로 파괴된다. 열 번의 기회 동안 정확한 패스워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파괴되도록 프로그래밍된 초기 디지털 지갑이었다. 지갑 안에는 1만 개 비트코인이 10년 넘게 잠들어 있었다. 오늘 시세로 1 비트코인은 7천2백만 원을 조금 웃돌았다. 7천억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2010년 5월 어느 날이었다. 라슬로라는 얼굴도 모르는 친구가 비트코인 포럼에 피자 라지 두 판에 1만 비트코인을 내겠다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올렸다. 비트코인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였지만, 아무도 그의 제안에 응답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모두 기술적인 관심이 있었을 뿐 현실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사용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J 역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상 암호화 기술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높게 가치를 책정해도 1만 비트코인은 4만 원도 되지 않았다. J는 호기심 반, 측은한 마음 반에 라슬로에게 파파존스 피자 두 판과 콜라 한 병을 주문해 주었다. 라슬로는 피자를 받은 즉시 J의 디지털 지갑으로 1만 비트코인을 전송했다. 이후 관심이 시들해진 J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고, 대청소를 하다 발견한 오래된 노트북을 본 순간 망각의 강을 건넜던 기억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J는 망설였다. 컴퓨터를 끄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살까? 과연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기회에 도전해 볼까? 또 틀리면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평생 자신을 저주하지 않을까? J는 눈을 감았다. 정직하게 살아왔는지 자신에게 질문했다. 불의에 저항하며 선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물어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다시 두 손을 자판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한 글자씩 천천히 자판을 두드렸다. 가능성이 있는 조합은 정말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L.o.n.d.o.n.B.r.i.d.g.e.1.9.7.3.^.^.!


조용히 엔터키를 눌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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