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네펜데스의 경고

한뼘소설

by 조이홍

며칠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대지의 여신 저 깊은 품까지 뿌리들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뿌리는 우리들의 조상이 선택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생존 방식이었다. 우리는 한가로이 거니는 자유를 포기하고 정지(停止)라는 굴레 속에 안착했다. 가끔 찾아오는 바람이 세상 소식을 전해주었다. 흔들리고 흩날리며 때론 질주를 꿈꾸기도 했다. 이룰 수 없는 이상은 언제나 달콤쌉싸름했다.


우리는 정적인 존재다. 시간을 거스를 수 없지만 그에게 굴복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싸우지 않음을 선택함으로써 패배자도 승리자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아마 당신들은 우리가 주어진 숙명을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처절하게 투쟁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멈추어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살아있는 존재라는 걸 망각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라. 먹고 자고 짝짓기를 통해 자손을 퍼뜨리는 우리도 당신들처럼 숨 쉬며 살아가는 생명체다.


태양의 신 아폴론과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욕심이 많은 게 아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더 많은 영양분, 더 많은 물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제 살을 갈기갈기 찢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들을 보냈다. 어느 날 우리 몸에 볼록한 주머니 하나가 생겨났다. 고통을 딛고 마침내 우리는 스스로 운명을 뒤바꿨다. 주머니 안으로 모기나 작은 곤충들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우리 몸의 일부가 되어 주었고, 우리는 언제나 그들에게 감사했다.


어떤 사촌은 자기 주머니를 박쥐가 잠잘 수 있게 내어주었다. 동굴에서 생활하는 박쥐는 멀리까지 사냥 나왔다가 사촌 주머니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멀리서도 박쥐가 찾아올 수 있도록 향기를 내뿜었다. 그 대가는 시원한 배설 한 번으로 충분했다. 다른 사촌은 자신의 주머니를 나무 두더지 화장실로 제공했다. 나무 두더지는 배설하면서 사촌이 만들어 놓은 달달한 즙도 빨아먹었다. 사실 그 즙은 배설을 촉진시켰는데 나무 두더지만 몰랐다. 역설적이게도 정지된 생명체인 우리가 가장 역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아직도 우리가 한없이 나약한, 당신들이 언제라도 꺾어버릴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과 당신 무리의 확장을 중단하라. 우리의 대지를 침범하지 말라. 여신의 흐느낌이 들리지 않는가? 이번에는 당신들이 정지할 차례다. 멈추지 않으면 다음에는 우리가 어떻게 변신할지 모른다. 이 경고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라. (끝)


네펜데스.jpg <네펜데스, 이렇게 역동적인 식물은 처음 보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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