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업투자자의 아침

한뼘소설

by 조이홍

새벽 4시, K는 늘 이 시간에 잠에서 깬다. 커피 한 잔 내리는 동안 미 증시부터 확인한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속되는 경제 성장 자신감으로 다우, S&P 500 지수가 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숨 돌렸다. 우리 증시가 미 증시와 디커플링이 일어난 지 한참 되었고 최근에는 선제적 영향력을 미치기도 하지만, 여전히 미국이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했다. 적어도 오늘은 미 증시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을 터였다. 환율, 고용지표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사이 커피가 다 내려졌다. 커피를 마시며 다른 뉴스들도 확인했다. 미 재무부가 기업 돈세탁을 조사한다는 루머가 나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터키 정부는 암호화폐를 금지한다는 뉴스도. 한동안 천정을 모르고 날뛰던 비트코인 급락은 불 보듯 뻔했다. 이미 관련주에서 충분한 수익을 냈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 맛에 입안이 텁텁했다.


K는 전업투자자다. 대학을 졸업하고 100군데가 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그를 원한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어학연수와 교환학생 경험도 있었다. 학점은 상위 5%에 다양한 입상 경험도 있었다. 스펙이 아니라 운이 없다고 믿은 그는 주식투자에 눈을 돌렸다. 학생 때 몇 번 모의투자 대회에 참가해 꽤 괜찮은 수익률을 맛본 그였다. 친구 집에 신세 지기로 하고 뺀 원룸 보증금 3백만 원을 종잣돈 삼았다. 목숨과도 같은 3백만 원이 한 달만에 1백만 원이 되었다. 모의투자가 소꿉놀이라면 실전 투자는 피가 튀는 전쟁이었다. 피가 바짝 말랐다. 그때부터 주식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이름난 투자자들의 블로그를 찾아 노하우를 배우려 밤잠을 설쳤다. 그렇게 10년. 여전히 4시간만 자는 그는 슈퍼개미가 되었다. 계좌에 찍힌 잔고는 백억이 넘었다. 누가 봐도 그는 성공한 전업투자자였다.


K는 자신만의 매매 기법도 찾았다. 짧게는 수 초, 길게는 수 분 안에 결과를 내는 스캘핑이 그의 투자성향과 잘 맞았다. 잔고에 20억이 찍힌 날 더부살이 신세도 끝냈다. 전세 1억의 스무 평 남짓한 오피스텔이었지만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날 이후 큰돈 쓸 일이 없었다. 소비라고는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게 전부였다. 외출할 일이 없으니 옷도, 신발도 사지 않았다. 명절에 고향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자식 얼굴 보고 싶다던 부모님도 넉넉한 용돈에 더는 채근하지 않았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그가 건강을 위해 한 일은 해외주식 거래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스캘핑 매매 특성상 장중에는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해외주식 거래까지 하려니 몸이 견뎌내질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유일하게 즐기는 커피가 요즘 들어 무척 쓰게 느껴졌다.


K는 DART에 접속해 관심 기업 공시를 확인했다. 개장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았지만 마음이 급했다. 스캘핑이 초 단위 매매기법이라고는 하지만 차트분석과 기업가치 분석, 재무제표 확인은 기본이었다. 최근 관심종목에 포함시킨 스무 개가 넘는 기업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동트기 전인데 벌써 커피를 3잔이나 마셨다. 순간 모니터가 흐릿하게 보였다. 아랫배도 살살 아파왔다. 식은땀이 볼을 타고 또르르 굴러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커피 잔을 들고 있던 왼손에 힘이 쭉 빠지더니 키보드 위로 툭 떨어졌다. 놀랄 새도 없이 그의 몸도 모니터를 향해 천천히 기울었다. 그때 모니터 한쪽에 띄워둔 잔고가 보였다. 끝없이 이어진 숫자 0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주식에 투자하고 수익률에 목을 매었던가? 갑자기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K에게는 웃을 수 있는 단 몇 초의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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