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소설
파우스트 박사의 영혼을 얻지 못한 메피스토펠레스는 칩거에 들어갔다. 무저갱 같은 암흑의 동굴에서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졌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의 선한 의지는 어두운 충동,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찾아내리란 것이었다. 분하지만 자신이 완벽하게 패배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인간은 언어로 타인과 사랑, 우정, 신뢰와 같은 감정을 나누고, 책을 통해 고래로부터 쌓아온 지식과 지혜를 배웠다. 말이 탄생하기 전, 문자가 없던 시절이 그리웠다. 이제 누구도 악마와 계약하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아무리 그가 막강한 힘을 지닌 최상급 악마라고 해도 인간의 언어와 문자를 소멸시킬 능력은 없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졌다.
한동안 인간 세계에서도 지옥에서도 메피스토를 본 이가 없었다. 심지어 그가 주인공인 '발푸르기스의 밤'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급 악마들의 입에서 입으로 그가 無의 세계로 돌아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H는 지하철에서 이상한 사람을 보았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그가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쇳소리를 내며 기분 나쁘게 웃기만 했다. 외모도 정말 특이했다. 툭 튀어나온 이마는 마치 뿔난 듯했고 가늘고 긴 턱은 염소를 닮았다. 어딘지 어색한 빨간 조끼와 말굽 부츠도 눈에 거슬렸다. 누가 요즘 저렇게 입고 다니나 싶었다. 마침 다음 역에서 내릴 차례였다. H는 게임을 자동 모드로 전환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다 남자의 혼잣말을 들었다. 목소리가 섬뜩했다.
"도대체 누가 악마도 감히 해내지 못한 일을 성공했단 말인가? 이제 인간들은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군. 옛 시대의 지혜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 킥킥킥. 진작 그랬어야지. 게다가 서로 대화도 화지 않는단 말이지. 손에 든 저 작은 것이 무엇이길래 온종일 저것만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연구해 볼 가치가 있겠어. 그나저나 누가 無의 세계에서 이 고약한 악마님을 불러 냈을까? 킥킥킥. 인정 많은 노인네가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나? 킥킥킥. 이제 방황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는 걸? 저 작은 물건이 그들을 인도해 주니까. 킥킥킥! 자, 그럼 어떤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