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허생전

한뼘소설

by 조이홍

허생은 신림동 고시원에 살았다. 그의 나이가 몇이나 되었고 언제부터 그곳에 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시 1차에 합격했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었다 등등 소문이 무성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출사표 고시원' 4층 가장 끝방, 햇볕도 들지 않고 환기도 되지 않는 후미진 한 평이 그가 사는 곳이었다. 편의점에 일주일 치 먹을 양식을 구하러 나올 때를 제외하고 비좁은 방에서 나오는 법이 없었다.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하나 아무도 그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공기처럼 허생도 그러했다.


어느 날 출사표 고시원 여주인이 참다못해 허생에게 채근하듯 말했다.


"이제 시험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틀어박혀 있으면 어떻게 해요? 아직 한창나이인데 몸 쓰는 일이라도 구해야지······."

"제가 몸 쓰는 일에는 서툴러서요."

"기술이라도 배우든가!"

"문과 출신이라서요."

"우리 고시원 VIP한테 오죽하면 내가 이런 말 하겠어요? 뭐라도 해야지, 장사라도 배우던가!"

"요즘 자영업이 얼마나 힘든 데요."

"아이고, 정말 젊은 사람이! 부모님 생각도 좀 해야지. 언제까지 학생 뒷바라지로 고생시킬 거야?"

"아깝다! 1 BTC가 1억 원이 될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이제 6천9백만 원인데······."

허생은 가상자산 플랫폼 빗썸에 로그인해 소유하고 있던 비트코인 전량을 매도 걸었다. 일론 머스크의 트윗이나 거대 테크 기업이 연일 쏟아내는 가상자산에 대한 긍정적 발언 덕분에 거래는 순식간에 체결되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은 모두 110 BTC, 체결 금액은 약 76억 원이었다.


종잣돈을 마련한 허생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옆방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는 벌써 합격해 OO공사에 근무했다. 허생은 친구와 아주 오랜 시간 통화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종잣돈 전부를 변두리 땅을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6개월 후, 그가 산 땅은 다섯 배가 뛰었다. 신도시로 지명되리라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친구 몫으로 10%를 떼어주고도 허생이 보유한 자산은 어느새 3백억 원을 훌쩍 넘었다.


허생은 자산의 반은 강남 부동산에, 반은 주식에 투자했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에도 강남 아파트 값은 1년 만에 두 배가 올랐고, 게임과 바이오 회사에 투자한 주식은 3배가 올랐다. 그렇게 1년 만에 자산은 8백억 원이 되었다. 2년여 만에 신림동으로 돌아온 그는 고시촌 인근 땅을 사들였다. 그가 부동산과 주식 투자의 숨은 고수라는 소문이 부자들 사이에 자자해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잠실 운동장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그는 단 한 푼도 투자받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경제와 자본주의 민낯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더 큰돈을 굴리면 가진 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지지 못한 자는 더 가난해질 게 분명했다. 허생은 멈춰야 하는 순간을 알았다. 그는 오직 자신의 자산으로 신림동 일대를 개발했다. 낡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언제나 화재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그곳이 자연친화적인 녹색건물들로 탈바꿈했다.


허생은 그 건물들을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을 위해 내주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지만, 신림동 고시원 한 달 이용비만으로도 청담동처럼 품격 있고, 성북동처럼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 1년이나 살 수 있었다. 청년들에게 허생은 더 이상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는 공기가 아니었다. 그는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일부 언론은 그가 헬조선에 속박된 청년들을 구하러 온 메시아라고 했고, 또 다른 언론은 그가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희대의 사기꾼이라고도 했다.


허생은 관악산에 올라 신림동 일대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알았다. 단 한 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고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때론 부정한 방법도 동원했다. 이제 가진 것 모두를 내놓았으니 그는 자유로웠다. 그날 이후 허생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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