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소설
날씨가 따뜻했다. 하늘은 수채물감을 풀어놓은 듯 투명한 파랑이었고 흰구름 하나가 무리를 이탈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어린양처럼 평화로웠다. 아름다운 4월이었다. 활짝 핀 봄꽃들은 태양만큼 눈부셨다. 자연이 건넨 봄 인사는 찬란한 절정을 향해 내달렸다. 봄의 향연 속에서 나는 아빠와 연을 날렸다. 독수리가 그려진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연이었다. 공원에 있는 아이들 열에 일곱은 모두 똑같은 연을 날렸다. 물론 차이점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 연은 진짜 독수리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비상했는데, 우리 연만 매번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빠, 재미없어요. 그만 해요."
"포기하면 안 돼. 다시 한번 해보자."
"벌써 여러 번 시도했잖아요. 우리 연은 불량인가 봐요."
"요령이 없는 걸지도 몰라. 이번에는 틀림없이 날게 될 테니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아빠는 두 손으로 연을 잡았고 나는 줄을 팽팽히 당겨 앞으로 달렸다. 조금만 더 빨리 뛰어보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오른쪽 다리만 아니면 얼마든지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아빠는 계속 재촉했다.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힘껏 달렸다. 또다시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가 싶더니 이내 연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줄을 더 풀라는 긴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말대로 줄을 풀어 흘려보냈다. 마침내 우리 연도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바람을 타고 하늘 끝까지 닿았다. 줄에 의지한 연이 아니라 진짜 한 마리 독수리처럼 보였다. 너무 기뻐서 그 자리에서 겅중겅중 뛰었다. 오른쪽 다리가 욱신거렸다. 뒤돌아 아빠를 보았다. 다 큰 어른이 울고 계셨다. 아빠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그날은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날이었다. 그 사고로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3년 동안이나 휠체어 신세를 졌다. 어린 나는 엄마의 부재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빠에게 물어보면 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는 하늘나라에 먼저 가 계시다고.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편지를 썼다. 부치지 못하는 편지였지만 왠지 엄마는 내 편지를 읽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빠가 몰래 내 편지를 훔쳐본 모양이었다. 그날 연이 더 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는 높이에 이르자 아빠가 연줄을 끊었다. 그리고는 내가 쓴 편지가 방금 하늘에 있는 엄마에게 전해졌다고 말했다. 그제야 아빠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연을 날리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다. 오른쪽 다리도 정상이 되었다. 나는 매 해 같은 날 연을 날린다. 연에는 두 통의 편지를 담았다. 한 통은 엄마, 또 한 통은 아빠를 위해서다. 두 분이 하늘나라에서 내 편지를 받고 얼마나 행복해하실지 생각하면 기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눈물은 흐른다. 내 눈물은 그날 아빠의 그것을 똑같이 닮았다. (끝)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