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소설
찰싹!
상구는 저도 모르게 휘두른 손찌검에 화들짝 놀랐다. 경선의 뽀얀 볼이 금방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도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상구는 딸에 대한 죄책감을 얼른 삼켜버리고 사그라들었던 분노를 다시 불살랐다.
"이 아비가 너를 어떻게 공부시켰는데, 대학생이 공부나 할 것이지, 무슨 데모를 해, 데모를!"
"저는 신념을 위해 싸울 뿐이에요. 독재를 청산하고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게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요!"
"뭐라고? 지금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떠드는 거냐? 이 나라가 어떻게 세운 나란데! 경찰 아비 둔 덕에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사는 거야."
"그래서 더 열심히 투쟁하는 거예요. 쪽팔려서요."
찰싹!
경선은 자신도 모르게 범준의 뺨을 때릴 뻔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자신이 고마웠다. 고성이 오가며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더라도 아들에게 손찌검하는 일은 절대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젊은 날 쟁취하기 위해 헌신했던 가치가 한순간에 날아갈 뻔했다.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도전적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들에게 침착하게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엄마가 너만 한 나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 수많은 생명을 희생해 얻어낸 값진 것들이야. 지키려고 하지 않으면 다시 잃게 될 거야."
"저는 저를 위해 살 뿐이에요. 진보니 보수니 그런 이념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요. 우린 그저 일하고 싶을 뿐이에요. 차별당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라고요! 그게 뭐가 나쁘죠?"
찰싹!
범준은 저도 모르게 휘두른 손찌검에 깜짝 놀랐다. 아들의 뽀얀 볼에 그의 손자국이 선명했다. 아들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 가정폭력방지법, 청소년 보호법을 모두 위반하셨어요. 아시죠?"
"본질을 흐리지 마. 지금이 어느 땐데 고등학생이 데모를 해, 데모를!"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전진시키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래서 투쟁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시대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요!"
범준은 오래전에 어머니와 싸웠던 일이 희미하게 기억났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자신도 아들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는 걸 알았다. 갑자기 그는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은 적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