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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l 03. 2021

국보 2호와 보물 2호

문화재를 생각하다

다음 질문에 답해 보시오.  


☞ 우리나라 국보 제2호는 무엇일까? 

☞ 우리나라 보물 제2호는 무엇일까? 


아마도 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으리라. 특별히 역사나 문화재에 관심이 없다면 말이다. (있어도 어렵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 무엇일까? 

☞ 우리나라 보물 제1호는 무엇일까?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이 질문에는 금방 답하리라. 예전 개그콘서트에 나온 어떤 개그맨의 유행어처럼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기 때문일까? 


궁금한 분들을 위해 첫 퀴즈에 대한 정답을 공개하면 다음과 같다. 


국보 제2호는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이고, 보물 제2호는 옛 보신각 동종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이다. 솔직히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기 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더랬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지정문화재(국보와 보물)에서 '제 O호' 번호가 사라진다는 뉴스를 들었다. 문화재청이 대외 문화재 행정에서 지정번호 사용을 의무화한 조항을 개정하는 문화재 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보 제1호 서울 숭례문은 국보 서울 숭례문으로, 보물 제1호 서울 흥인지문은 보물 서울 흥인지문으로 바뀌게 된다. (한때) 역사학자를 꿈꾸었던 학생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뉴스라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얼른 찾아 입법예고를 살펴보았다. 아래와 같은 개정 이유와 입법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개정 이유>
문화재 지정번호가 문화재를 서열화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대외 문화재 행정에서 지정번호를 사용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공문 및 각종 신청서에서 문화재 지정번호를 삭제하고, 내부 관리번호로만 사용

<입법 효과>
문화재 지정번호를 가치 순서로 오인함에 따라 발생하는 불필요한 논란 해소

반가운 소식이었다. 문화재 지정번호는 행정상 편의를 위해 지정된 것이지만,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과 문화재 가치 순위(서열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오해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2015년 국민인식조사 때 국보 1호의 의미를 가치가 가장 높은 문화재로 인식한다는 답변이 68%를 차지했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 때는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재지정하자는 국민청원이 잇따르기도 했다고.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엮어져 '현재'가 되었다. 그 길 위에 놓인 돌멩이 조각 하나가 없었다면 오늘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소중하지 않은 문화재가 어디 있겠는가! 이번 법 개정을 통해 문화재와 관련한 이러한 해묵은 논란들이 해소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국보와 보물 지정이 왜 일제의 잔재인지, 국보와 보물의 차이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자 한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보와 보물을 규정한 '문화재 보호법' 제23조를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23조(보물 및 국보의 지정) ①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형문화재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
② 문화재청장은 제1항의 보물에 해당하는 문화재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수 있다.

건조물, 전적(典籍: 글과 그림을 기록하여 묶은 책), 서적(書跡), 고문서, 회화, 조각, 공예품 등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ㆍ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考古資料)유형문화재라고 한다. (문화재 보호법 제2조) 유형문화재에서 '중요한' 것을 보물을 지정하고, 보물 중에서 '국보'를 지정한다. 


이에 따르면 보물인 흥인지문보다 국보인 숭례문이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물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다. 미학적인 관점(또는 고미술)을 포함해 역사적 측면에서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비교할 수 있을까? 심지어 흥인지문이 먼저 지어졌다. (완공은 숭례문보다 후에) 한양의 사대문 중 동대문과 남대문이 국보와 보물로 구분될 만큼 차이가 존재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잔재'라는 문제가 불거진다. (참고로 서대문은 돈의문, 북대문은 숙정문이다. 서대문은 일제 강점기 때 철거당했다)


1933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문화재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실시해 조선총독부제령 제6호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공포한다. 제1조 1항에 "건조물·전적·서적·회화·조각·공예품 기타 물건으로 특히 역사의 증징(證徵) 또는 미술의 모범이 되는 것은 조선총독이 보물로 지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숭례문이 보물 1호, 흥인지문이 보물 2호로 지정되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 국보를 둘 수 없어 보물로 지정했다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많은 문화재 중에 왜 숭례문이 보물 1호, 흥인지문이 보물 2호가 되었을까? 

여기에 두 가지 가설이 있다. 

하나는 조선총독부가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 이르는 '거리'를 기준으로 번호를 지정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일제 식민사관이 교묘하게 깔린 것으로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 군대가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진입했고,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가 흥인지문을 통해 한양에 진입했기에 두 성문을 보물 1호와 2호로 지정했다는 설이다. 두 가지 모두 '설'일뿐이니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당시 경성(서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교통에 방해가 되는 흥인지문과 돈의문을 철거해야 했는데, 위와 같은 까닭에 흥인지문은 남고 돈의문만 철거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앞서 일제는 1916년 '고적급 유물보존규칙'을 공표하고 조선총독부에 고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1924년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고적급 유물등록대장 초록'을 간행했다. 이 당시 1호는 원각사지 십층석탑이었고, 총 193점의 유물을 등록했으나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933년에 각각 보물 1호와 2호로 등록된 것이다. 이 시기에 일제가 식민사관을 강화해야 할 어떤 요인이 있었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겠으나 두 번째 가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을 간과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문교부 문화국은 법령에 따라 국보 367건, 고적 106건, 고적 및 명승 3건, 천연기념물 116건 등 총 592건을 재지정했는데 이때 서울 남대문(숭례문)이 국보 1호, 서울 동대문(흥인지문)이 국보 2호로 지정됐다.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을 그대로 따랐다. 전쟁 직후라 문화재 관리에 세심한 관심을 가질 수 없었을까? 조선총독부의 법령을 그대로 따른 것이 아쉬운 대목이고,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지점이다. 이후 1962년 1월 문화재 보호법이 제정되고 국가 지정 문화재가 전면 재정비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국보 1호 서울 남대문, 보물 1호 서울 동대문이 지정되었다. 이전에 국보 1, 2호였던 것이 62년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국보와 보물로 운명이 결정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문화재 보호법 23조에 의한 분류인지,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2008년 2월 방화에 의해 숭례문이 불탔다. 뉴스를 통해 그 생생한 화재의 현장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영혼의 일부가 불타는 기분이었다. 특별히 문화재에 관심이 많다거나 애국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무기력했다. 사실 그 숭례문은 우리가 아는 역사 속 그대로의 숭례문도 아니었다. 태조 때 완공되었다가 세종 때 다시 지어졌고, 성종 때 중수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훼손되기도 했고 한국전쟁으로 파손되기도 했다. 각 시대마다 무수히 고쳐지고 복구되었다. 방화 후 다시 지어진 숭례문은 그 이전 숭례문과 같은 숭례문일까, 아니면 다른 숭례문일까? 1,000년 후 후손들은 1398년 완공된 숭례문, 1448년 신축된 숭례문, 2013년 복구된 숭례문을 어떻게 생각할까?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하나인 거북선이 보존되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시간이 지날수록 부품이 낡아 오래된 부품들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그 일을 맡은 장인은 새 부품으로 교체하고 낡은 부품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그렇게 수 십 년이 흐른 어느 날 거북선이 두 대가 되었다. 오리지널 거북선의 부품이 낡아 지속적으로 교체했고 버려진 부품은 장인과 그 후손들이 모아 복제 거북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리지널 거북선은 옛 부품은 하나도 남지 않고 시대마다 새로운 부품으로 변경되었다. 복제 거북선은 오리지널 거북선의 부품으로만 만들어졌다. 과연 어떤 거북선이 진짜 거북선일까? 국보와 보물을 포함해 문화재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 


<표지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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