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Jul 12. 2021

나를 사랑한 스파이

SF한뼘소설

"그 버튼에서 손을 떼요, 김박사!" 

"006, 당신이 이중 스파이일 줄 알았어요.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거예요. 미친 과학자의 황당한 실험에 인류의 운명을 걸고 도박할 수는 없어요." 

"당신이 죽인 그 미친 과학자가 바로 제 아버지예요. 그를 모욕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지구와 인류를 사랑한 진정한 과학자셨어요."

"그가 당신의 아버지라고요? 세계 인구의 3분의 1을 죽일 뻔했다고요. 그것도…."

"네, 선진국들이죠. 부자나라고 강력한 힘을 가진. 그래서 당신을 보내 막은 거겠죠. 지구가 왜 이렇게 고장 났나요? 누가 온실가스로 대기를 덮어버렸고, 누가 플라스틱으로 바다를 쓰레기 지옥으로 바꿔 놓았죠? 지구 평균 온도를 4도나 올려놓은 범인이 누군가요? 말해봐요! 모두 그들이잖아요."

"당신 말이 모두 맞아요, 김박사. 하지만 그들도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 노력들이 결과로 나타날 때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시간(golden hour)을 놓친 게 그들의 죄예요. 그래서 아버지와 제가 시간을 벌어주려는 거예요. 이 나노 입자들이 대기권에 뿌려지면 태양열을 반사해서 지구가 더 뜨거워지는 걸 막아줄 거예요. 시원한 지구가 돌아올 거라고요.

"그 가설은 완벽하지 않아요. 입자가 대기권에 뿌려진 후에는 통제할 수도 없잖아요. 빙하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요! 상황만 더 나빠질 뿐이에요."

"아버지 가설은 완벽했어요. 수백 번도 넘는 실험으로 제가 그 가설을 입증했어요. 지금 이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인류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요."

"오, 김박사. 당신마저 쏘게 하지 말아요. 난 당신을…."

"그만! 우리 사이의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요. 절 사랑했다고요? 당신이 속은 거예요. 제가 당신을 이용했다고요. 지금 우리 대화도 그들이 엿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요. 지구와 인류를 대상으로 미친 실험을 할 수 없다고 했나요? 지난 100년 간 성장과 소비라는 이름으로 화석 연료를 실컷 태워가며 광란의 실험을 한 장본인이 바로 당신들이에요. 이제 파티를 끝낼 때예요. 지구는 더 이상 당신들이 필요치 않아요. 그럼…."


탕탕탕.

세 발의 총알이 김박사를 향해 무심하게 날아가 꽂혔다.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평화가 다시 찾아오리라. 006은 죽은 김박사와 발사 버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가 지켜낸 것이 지구의 평화와 안녕인지 006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누가 뭐래도 지구는 여전히 뜨거웠고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태풍과 가뭄으로 목숨을 위협받았다. 2040년 8월, 올여름은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되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