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여름방학 독서목록
오늘 둘째 아이가 방학했다. 첫째 아이는 지난주 금요일에 했다.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뭐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그게 있었지! 사실 열흘 전부터 준비해 오던 게 있었다. 물리적 시간과 노력이 제법 필요했다. 이 무더위에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얼마나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할지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 좋은 아빠 둔 줄 알라고….
짜잔! 아이들 앞에 내민 건 여름방학 독서목록이었다. 해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수해 'Book-Pool'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름의 기준으로 책을 엄선해 독서목록을 만들었고 이는 아이들이 여름방학 내내 읽어야 할 '아빠 숙제'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때가 온 것이다. 아이들은 이번에는 아빠가 어떤 재미있는 책을 골라줄지 무척이나 기대하는 눈치였다. 독서목록을 내밀자 예상대로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꿈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독서목록을 기뻐하며 받은 적은 없었다. 그저 아빠의 헛된 바람일 뿐! 아이들은 또 그거야 하면서 OTL 모드로 전환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욕심 버리고 책의 권수를 '확' 줄였으니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위로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수학과 영어, 역사와 과학 공부를 좋아하는 첫째 아이는 유독 국어 공부와 책 읽기, 글쓰기는 싫어했다. 둘째 아이는 책은 많이 읽는데 '속독'하는 경향이 강해 책 한 권을 읽어도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 방학에는 그런 단점들을 보완할 수 있는 독서 습관을 갖기를 바랐다. 물론 기본은 좋아서 하는 독서, 스스로 하는 독서, 재미있는 독서다. 그림책에서 두께가 제법 나가는 책으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자연스레 아이들이 책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잃어버린 고리를 다시 찾아주리라는 결연한 마음으로 아이들 책을 골랐다.
아이들에게 독서목록을 만들어 줄 때 가능하면 내가 먼저 읽는 편이다. 동물농장이나 칼의 노래는 최근에 다시 읽었고 이제 중학교 2학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겠다 싶었다. 칼의 노래는 조금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일단 아이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읽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페인트나 유진과 유진은 청소년 소설로 워낙 유명한 책이다. 페인트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도 정말 좋은 책이다. 유진과 유진은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5번 레인은 아내가 추천했다. 걸음마보다 수영을 먼저 배운 우리 아이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듯했다. 먼저 읽어봤는데 무척 재미있었다. 철학의 숲은 초등 고학년들도 읽는 책인데 동서양의 동화와 우화, 신화 등을 통해 철학적 탐구를 경험할 수 있는 책이다. 새빨간 거짓말은 세계 100대 아동문학에 선정되기도 했던 작품인데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다. 현대판 아라비안나이트라는 표지 문구가 허언이 아니었다. 언젠가 써보리라 마음먹었던 내 머릿속 소설과 너무 비슷해 좀 놀랐다.
5번 레인은 둘째 아이도 읽기로 했다. 초등학교 수영 선수들의 열정과 우정에 관한 내용이라 어려움 없이 읽겠다 싶었다. 마사코의 질문은 벌써 세 번째인데 아이가 조금 어려워했다. 그래도 초등학교 5학년이면 읽을 시기라 다시 한번 목록에 넣었다. 가슴 아픈 역사도 우리 삶의 일부라는 점을 깨우쳐주고 싶었다. 미래가 온다 기후 위기 편은 요즘 내가 가진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해서 골랐다. 심각한 지구온난화 문제를 아이들이 읽기 쉽게 풀었다. 둘째 아이가 기후학자가 되면 멋있겠다 속으로 생각했다. 우주로 가는 계단이나 소나기, 모비딕,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는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일 테지만, 5월 18일, 맑음은 조금 걱정이 된다. 아직 구매하지도 빌리지도 못했는데 내가 먼저 읽어보고 한번 더 생각해 볼 예정이다. 속독하는 둘째에게는 책을 소리 내어 읽도록 했다.
독서 시간은 매일 한 시간으로 정했다. 한 권당 평균 5일 정도 읽기로 했고 칼의 노래 경우에만 7일 정도 예상했다. 독서 후에는 '독서일기'를 써야 하는데 그날 읽은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문장과 그 이유를 적는 것과 줄거리를 작성하는 것이다. 한 권을 다 마치면 여기에 '마인드 맵'을 추가하고, 원고지에 독후감을 쓰는 것으로 한 권 책 읽기 여정이 끝난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읽은 것은 그저 휘발성 강한 텍스트 읽기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 쓴다는 것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자가 되는 것이고 여기에 생각과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좋은 독서활동이 좋은 공부머리를 만들어 준다는 <공부머리 독서법>을 몇 번이고 읽었다. 좋은 공부머리를 만드는 것 역시 아빠의 독서목록이 만들어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읽고 쓰는 즐거움이 결국 내 삶을 관통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어디에서 무얼 하든 아이들 삶에 항상 책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독서를 취미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책은 삶의 토대이자 존재의 조건이다. 책과의 만남이 있고 그 위에서 인생이라는 길이 시작된다." (고미숙,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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