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서 만난 제주 바다
어렸을 때(국민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수영복이라는 게 딱히 없었다. 당시에 수영복 자체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수영복은 시장에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어린 내게 수영복을 사주지 않았다. 사실 나도 딱히 수영복이 왜 필요한지 몰랐다. 어린 내 눈에 빤스(왠지 옛날에는 이렇게 불렀다)와 수영복은 구별되지 않았다. 심지어 누나에게 물려받은 꽃무늬 빤스를 입기도 했다. 부끄럽다는 것도 모를 만큼 어렸더랬다.
아버지는 낡은 오토바이 앞에 나를 앉히고 어머니는 뒤에 태워 종종 천렵을 가시곤 했다.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짠 수제 투망과 부르스타(휴대용 가스버너) 그리고 라면 몇 봉지를 챙겨갔다. 아버지 투망질은 정말 예술이었다. 한데 뭉쳐있던 투망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스파이더맨의 거미줄 같았다. 그것도 잠시,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일은 금방 싫증 났다. 그럼 빤스만 입고 물놀이했다. 아무리 깊어도 배꼽 밖에 오지 않는 수심은 물놀이에 익숙한 내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수영을 배우지 않았지만 물속이 참 편했다. 숨을 참고 꼬박 1분은 물속에서 버텼다. 당연히 물안경이란 것도 없었지만, 물속에서도 눈을 뜰 수 있었다. 나만 되는 줄 알고 내가 좀 특별한 아이인가 생각했는데 당시 아이들은 모두 할 수 있었다. 물안경이 없었으니까. 조금 뿌옇기는 해도 물고기들이 다 보였다. 그때부터 물을 참 좋아했다. 온종일 놀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잡은 물고기를 챙겨 집에 왔다. 피라미나 갈겨니 같은 민물고기들은 생선조림, 매운탕으로 그날 밥상에 올랐다. 물론 어린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가끔 어머니가 튀김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때는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말도 아꼈다. 어린 시절 생선 튀김은 내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생선 요리였다. 집안 형편 때문에 직접 잡아오지 않으면 생선을 먹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입 짧은 막내였던 나는 군대에 다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생선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방학했다. 방학이라도 여전히 일정이 바쁜 아이들과 당일 코스로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 시국에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마뜩잖았는데 다행히 검색왕 아내가 아름답고 인적 드문 해변을 찾아냈다. 부지런히 움직여 새벽 일찍 출발했지만, 모두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주말 새벽 고속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네 시간 넘게 운전해 간신히 바닷가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머리 위에 떠 있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체온을 측정하고 해변에 들어섰다. 슬리퍼 사이로 스르륵 닿은 모래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지경이었지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얼마만의 여행, 얼마만의 바다였던가! 뉴스에서 유명한 해수욕장은 피서객이 몰려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이곳도 여느 해수욕장 못지않게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물을 자랑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없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아내에게 (최소 10회 이상)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걸음마보다 수영을 먼저 배운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수영을 잘했다. 구명조끼는 벗은 지 오래고 핀(오리발)만 있으면 돌고래처럼 편하게 헤엄쳤다. 물을 좋아하는 DNA가 전달되었는지 아빠보다 물을 더 좋아했다. 체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한번 물에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주 한달살이 할 때 발견한 금능해변처럼 이곳에서도 다양한 생명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망상어부터 전어, 복섬, 범돔, 노래미, 쏨뱅이, 자리돔(확실치 않다) 그리고 미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물고기로 가득했다. 바닷속에서 녀석들을 만나는 건 신기하고 조금은 아찔한 경험이었다. 갑자기 큰 물고기들이 눈앞을 휙 지나가면 가슴이 덜컥했다.(물안경으로 보면 실제보다 커 보인다)
잠자리채를 챙겨간 둘째 아이가 저보다 몇 배는 빠른 물고기를 잡겠다며 바삐 움직였다. 잠자리채로 바닷속에서 무엇을 잡을까 싶겠지만, 아빠를 닮아 어로(漁撈) 활동에 일가견이 있는 아이는 제법 솜씨가 좋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노래미며 쏨뱅이를 예닐곱 마리나 잡았다. 작고 예쁜 물고기들은 잡자마자 놓아주었는데도 그랬다. 한참 바닷물에 얼굴을 담그고 있던 아이가 다급하게 아빠를 찾았다. 물속을 가리키며 빨리 보라고 했다. 자맥질로 바닥에 닿으니 폐그물에 커다란 쏨뱅이가 엉켜 있었다. 이제껏 잡은 녀석들보다 더 컸다. 그런데 얼핏 보니 죽어 있는 듯했다. 움직인 걸 봤다며 빨리 어떻게 해보라는 아이. 솜사탕만 한 폐그물 뭉치를 모래사장으로 들고 나왔다. 순간 펄떡이며 살아 있음을 말해주는 쏨뱅이. 몇 가닥만 잘라주면 바다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바닷가에 가위가 있을 리 없었다. 사람도 없어 가위를 빌릴만한 곳도 없었다. 얕은 물에 그물을 내려놓고 한 올 한 올 엉킨 그물을 풀었다. 얼마 후, 바닷속으로 유유히 헤엄치는 쏨뱅이를 아이와 함께 말없이 바라보았다. 녀석이 보이지 않자 둘째 아이가 잡았던 물고기도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했다. 어차피 먹을 것도 아니고 통속에 오래 두면 괴로울 테니 그러자고 했다. 그 후로도 한참을 바다에서 놀았지만 아이는 구경만 할 뿐 더 이상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더위가 절정에 이른 오후, 몇몇 젊은 친구들이 이곳을 찾았다. 손에 작살을 들고 있었다. 저들도 신나게 즐길 권리가 있으나 작살은 좀 위험하다 싶었다. 다행히 그 친구들은 물놀이하는 사람들과 떨어져 수심이 깊은 곳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정글의 법칙' 같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작살이 신기했는데 저들도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노래미 두 마리를 잡고는 큰 물고기가 없다고 불평하며 금방 자리를 떴다. 그런데 그들이 떠난 자리에 작살에 찔려 죽은 노래미 두 마리가 나뒹굴었다. 먹을 것도 아니면서 굳이 이렇게 죽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물론 처음에는 많이 잡아서 회로도 먹고 매운탕도 끓여 먹으려고 계획했는지도 모르겠다. 운이 닿지 않아 작은 녀석 두 마리만 잡았고, 이걸로 뭘 할까 싶어 버리고 갔을지도 몰랐다. 사정이야 어쨌든 결과는 같았다. 하지 않아도 될 살생이었다. 작살이 멋지다며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도 죽은 노래미를 보더니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잠자리채로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고, 얼마간 관찰하다가 지금처럼 무사히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물론 자연에 가장 좋은 행동은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일 테지만, 아이들의 호기심으로는 그게 잘 안되니 적당한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죽은 노래미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환경과 관련된 책을 읽은 탓인지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용기나 과자 봉지를 주워 나왔다. 사람이 많이 찾는 해변이 아니라 쓰레기도 많지 않았다. 누가 보면 착한 척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착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깨끗하고 생명 넘치는 바다를 온전히 즐기고 싶을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것이 온종일 품을 내준 바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도리(道理)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멋지고 인적 드문 바다가 어디인지 궁금해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내로부터 함구령(緘口令)이 떨어져 차마 밝힐 수 없었다. 제주 금능해변도 브런치에 소개한 탓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예전 같은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아내는 이번만큼은 절대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 죄송한 마음이지만, 사람이 덜 닿는 만큼 바다가 더 깨끗하게 유지되는 것은 분명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