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한달살이 짐싸기>
평소 가족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한 달이나 여행한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제주 한달살이 짐싸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여행보다는 말 그대로 실생활에서 사용해야 할 짐들 위주로 챙겨야 했다. 아내와 상의를 통해 일단 우리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한 목록표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1. 여름용 옷과 속옷 일체
2. 등산용 바람막이 & 겉옷
3. 신발 3종 세트 : 운동화, 크록스, 아쿠아슈즈
4. 퀵 보드
5. 수영복, 슈트, 핀 (오리발), 물안경
6. 헤드랜턴 (밤낚시용)
7. 노트북 (아이들 숙제용)
8. 빔 프로젝터 (영화감상용)
9. 무전기 (아이들 장난감이지만 등산 가서 유용하다)
10. 그늘막 텐트 및 캠핑 의자
11. 족대 및 통발
12. 눈 & 어깨 안마기 2종
13. 화장품 (아내 변신용) & 자외선 차단제
14. 아이들이 읽을 책
15. 제주 관련 책 (사전 준비용으로 잔뜩 구입했던 책들)
16. 모드게임 3~4종
17. 그림 도구 (아내 수업용)
18. 선글라스, 모자
19. 등산 배낭 2개, 크로스백 2개
20. 전자 모기향
21. 블루투스 스피커
22. 얇은 이불 2개 (제주 집에 있지만 비상용)
23. 베개 (제주 집에 있지만 비상용)
24. 수건 (제주 집에 있지만 비상용) / 비치 타월
25. 구급약 (소화제, 연고 등)
26. 세면도구 일체
목록표를 만들어 보니 생각보다는 많은 것 같지 않았다. 평소 여행을 갈 때는 집에 있는 간식거리도 챙겨 갔지만 먹을거리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주 출발 이틀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해 보니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옷과 속옷만으로 이미 여행용 캐리어 두 개가 되었다. 여름용 옷이라 부피가 얼마 안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네 명이나 되다 보니 결코 적지 않았다. 목록표대로 짐을 싸다 보면 최소 6~7개의 캐리어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승용차에 구겨 넣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우선 옷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옷과 속옷은 딱 4일 치만 준비했다. 제주 숙소에도 세탁기가 있으니 그때그때 빨아 입기로 했다. 평소 2박 3일 여행을 갈 때도 4~5일 치 정도의 옷을 준비해 가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일이었다. 누군가 제주도는 습한 편이라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는 말을 해 그나마도 4일 치 정도로 준비를 했다. 이불과 베개도 뺐다. 한 깔끔하는 싸모님과 준은 베개와 이불에 매우 민감했지만 이번에는 그 깔끔함을 내려놓기로 했다. 겉옷들도 다 뺐다. (나중에 만장굴과 한라산에 오를 때 좀 후회를 하긴 했다) 아이들 책도 줄였다. 읽을 책은 서귀포 도서관이나 남원읍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로 했다. 아내는 캠핑 의자를 빼자고 했고 나는 아이들 퀵 보드를 빼자고 했다. 바닷가에서 해수욕할 때 꼭 필요한 캠핑 의자는 절대 양보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랬더니 아내가 이번에는 족대와 통발을 빼자고 했다. 족대는 민물용이지만 제주 바다에서 물고기 잡을 때에도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더군다나 제주에서는 구할 수도 없는 귀한 것이다. 족대를 뺄 바에는 차라리 나를 빼라고 최후의 저항을 했다. 통발도 낚시로 생선을 잡지 못할 경우 우리 양식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양보할 수 없었다. (아직 제주에 대한 환상이 깨지지 않을 때였다. 결국 통발로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아내는 결국 퀵 보드를 빼기로 했다. 안마기 2종도 뺐다. 어떻게든 빼고 줄이다 보니 최종적으로 캐리어 2개, 캠핑 가방 2개, 보스턴 백 2개가 되었다. 트렁크뿐만 아니라 뒷좌석과 보조석 아래까지 짐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내의 짐 쌓기 스킬로 퀵 보드는 살아남게 되었다. 아빠가 퀵 보드를 빼려고 했다는 말을 나중에 엄마로부터 들은 아이들의 따가운 눈총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알뜰하게 챙겨 왔지만 제주에 도착한 첫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볼 때 이것저것 많이 사기도 했다. 물론 주로 식재료들이었지만 두루마리 화장지, 주방세제, 세탁세제 등등 한달살이에 꼭 필요한 것들이 여전히 많았다. 대부분 제주에서 다 사용하고 왔지만 두루마리 화장지는 워낙 여러 개를 묶음 형태로 팔다 보니 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다시 가져오기도 했다. 짐싸기의 팁은 특별한 것이 없다. 지금 집에서 필요한 물건은 제주에서도 쓸 것이고, 필요 없는 물건은 제주에서도 안 쓸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려고 한다면 그 시간을 위한 아이템은 반드시 챙겨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르면 된다. 아내들은 이 분야의 전문가로 오랜 세월 실전 경험을 쌓아 왔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행복한 가정으로 가는 지름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