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U Phase 2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아내는 MASTER CHEF

by 조이홍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빠졌다.

큰일 났다.

좋지 않은 징조다.


WCU (Wife's Cooking Universe) Phase 1 당시 아내는 끼니 때가 되면 요리책을 펼쳤다.

아침에 준비한 음식은 점심으로, 점심에 시작한 요리는 저녁 때나 되어야 먹을 수 있었다.

책에 나온 그대로 요리했(다고 주장하)지만 맛은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아내는 본인이 요리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

눈치 빠른 첫째 아이는 적당히 먹는 시늉만 했다.

돌직구 둘째 아이는 "엄마 맛없어."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는 한 그룻 뚝딱 비우고 "한 그릇 더!"를 외쳤더랬다.

미각을 잃고 가정의 행복을 얻었으니 세상은 공평했다.

'등가 교환'의 원칙은 참으로 적확하게도 적용되었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한 아내는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하더니

마침내 (우리 집) Master Chef의 경지에 올랐다.

수많은 식재료가 희생한 덕분이었다.

때로 어떤 식재는 식탁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러기를 10년, 강산이 변했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요리에 있어서는 신의 경지에 오른 장모님 손맛을 닮아갔다.

그녀의 손끝에서 환상적인 음식들이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도 아내 음식에 감탄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하물며 미각을 잃은 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아내가 요즘 뜬금없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요리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WCU (Wife's Cooking Universe) Phase 2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은 동파육이었다.

돼지고기의 부드러운 식감과 진한 갈색 윤기가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 넘어가는 요리.

촉촉한 살코기와 쫄깃한 비곗살의 황금 비율이 전하는 중국 전통 돼지고기 요리의 정수.

Master Chef 경지에 오른 아내는 눈 깜짝할 사이 먹음직스러운 동파육을 저녁 식탁에 내놓았다.

아이들도 나도 정말 맛있게 먹었지만, 한 가지 궁금증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동파육과 삼겹살 구이의 차이점이 뭐였더라?

모두 맛있게 한 끼 먹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삶에는 늘 Happy Ending만 있는 건 아니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건이 발생한 건 주말 저녁이었다.

동파육에 성공(?)한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핫한 비법으로 청국장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된장찌개와 청국장찌개는 Master Chef 경지에 오른 아내도 어려워하는 음식이었다.

'된장찌개국'은 이미 브런치에서도 전설이 되었다. (Daum 메인에도 올랐으니)

음식을 시작하기 전 아내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비법 청국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 보았다.

"음, 별로 어렵지 않겠어!"

아내는 마치 요리 드라나마 영화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 흐르듯 요리를 해나갔다.

떡 벌어진 어깨가 든든했다.

"식사 준비됐어요. 나오세요!"

자신감 뿜뿜 담긴 목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커다란 국그릇에 한가득 담긴 청국장을 바라보았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 먹음직스러웠다.

서둘러 맛을 보았다.

이쯤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야 할 감탄사가 들리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

정적을 깨고 재빨리 외쳤다.

"오, 구수하니 맛 좋네!"

아이들도 아빠를 따라 맛있다고 했지만 입맛은 결코 거짓말하지 못했다.

첫째 아이는 국물만 몇 숟가락 떠먹었고,

두부를 좋아하는 둘째 아이는 두부만 건져 먹었다.

심지어 아내는 밥그릇보다 작은 그릇에 청국장을 덜어 먹었다.

"내가 생각한 맛이 아니야!"를 연발하며….

미각을 잃은 나만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아빠는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그렇게 많이 남기면 어떡해?" 물었더니,

강직한 둘째가 "아빠는 엄마 남편이니까 그 정도는 먹어야지." 하더라.

'그럼 너희는 엄마의 뭔데?'라고 따져 물으려다 말았다.

대신 아내에게 정중하면서도 공손하게 말했다. (눈은 마주치지 못했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지 않아도 돼. 난 당신 음식에 불만 1도 없어."

아내는 푸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냥 시켜 먹자. 새로운 요리에 도전한 내가 잘못이지."

아이들이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행복한 가족의 훈훈한 주말 식탁 풍경이었다.

그날 밤 아내는 WCU Phase 2 다음 목표를 찾느라 밤늦도록 인스타그래밍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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