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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사 먹는 음식이었어!

WCU Phase 2 - 아듀 2021 치킨이여!

by 조이홍

올해 우리 집에 더 이상의 치킨은 없다.

일말의 아쉬움도 미련도 없이 치킨에게 작별을 고했다.

치킨도 멋쩍은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아내가 손수 만들어준 닭튀김 덕분이었다.

WCU Phase 2를 맞아 아내가 야심 차게 만든 '맛 좋은' 닭튀김은 역설적으로 치킨과 이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우리에겐 몇 번의 불금과 크리스마스이브가 남아 있었다.

치킨과 맥주, 이 환상의 조합이 빠진 불금과 크리스마스를 상상할 수 있는가?

왜 치킨과 때 이른 이별을 하게 되었을까?

과연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건의 발단은 아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최신형 에어프라이어였다.

그동안 경품으로 받은 아담한 에어프라이어를 쓰던 아내는 그마저도 고장 나 몇몇 요리 만들기에 불편을 겪었다.

그러다 생일을 맞아 대형 에어프라이어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아내는 작은 용량 에어프라이어로는 만들 수 없었던 다양한 음식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며 희망에 부풀었다.

우리(나와 아이들)는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아내를 지켜보았다.

새 에어프라이어가 집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군고구마 이외에 별다른 음식은 맛볼 수 없었다.


지난 주말 아내가 서울 마라톤에 출전했다.

추첨을 통해 200명만 현장에서 뛸 수 있었는데 아내가 운 좋게 당첨(?)됐다.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코로나 검사까지 받았다.

풀코스를 뛰는 건 아니었지만, 10km 코스를 완주하는 것도 내게는 위대해 보였다.

주말마다 OO공원에서 5km씩 달리던 아내에게도 10km는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닐 터였다.

그날 저녁, 아내의 서울 마라톤 출전 및 10km 완주 기념으로 치킨을 시켜먹었다.

아내가 요즘 푹 빠진 OO치킨이었다. 짭조름한 간장 맛이 일품이었다.

평소 두 마리 주문하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고 우리 가족 네 명이 적당히 배부르게 먹었다.

마라톤을 뛰어 체력을 많이 소모했는지 웬일로 아내는 치킨이 부족했단다.

다음 날, 아내는 드디어 새 에어프라이어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주겠다고 발표했다.

바로 치킨이었다.

전날의 결핍이 아내로 하여금 요리 본능을 자극했다.

에어프라이어로 만든 치킨이 맛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기름기가 쫙 빠져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 맛이 정말 궁금했다. 과연 어떤 맛일까?


재료를 준비하며 이따금 스마트폰을 확인하던 아내는 별안간 미소를 짓더니 진짜 치킨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에어프라이어가 아니라 기름에 튀긴 진짜 치킨을 만들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보니 닭튀김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단다.

데자뷔!

에어프라이어로 만드는 치킨도 간단히 할 수 있는 요리는 아니었지만, 닭튀김은 차원이 달랐다.

밀가루 반죽에 튀김가루, 무엇보다 펄펄 끓는 기름과 요리 후 기름 냄새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집안에서 기름 냄새나는 게 싫어서 삼겹살도 먹지 못하게 하는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닭을 튀기겠다고?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뻔했다. 결말을 알고 보는 추리 영화나 마찬가지였다.

"그냥 에어프라이어로 해요. 나중에 기름 냄새 감당할 수 있겠어? 왠지 내게 미래가 보이는 것 같은데…."

"기왕 치킨 먹는 건데 제대로 먹어야지!"

이미 단단히 마음먹은 아내였다. (결핍은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은 취소)

반죽에 넣을 강황(카레)과 레몬즙까지 일이 점점 커졌다.

커다란 웍에 식용유가 콸콸 쏟아졌다.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초벌하고 칼집 내고 재벌에 삼벌까지 했다.

쟁반에 닭튀김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렇다, 아내는 손이 매우 컸다.


아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준 닭튀김 맛은 정말 최고였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치킨 못지않게 맛있었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에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정직한 반응을 보이던 둘째 아이도 진짜 맛있다며

엄마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첫째 아이도 예상보다 맛있어 놀라는 눈치였다.

분명히 맛있는데 세 조각, 네 조각, 다섯 조각 먹을수록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입으로는 맛있다고 느끼는데 자꾸 다른 맛, 특히 매운맛이 간절했다.

닭튀김에 잔뜩 밴 기름, 느끼함이었다.

아이들은 재빨리 김치를 꺼내와 먹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빨리 느끼함을 달래주지 않으면 식용유로 변할지도 몰랐다.

힘겹게 세 조각 째 먹다 내려놓은 아내가 풀 죽어 말했다.

"맞아, 치킨은 사 먹는 음식이었어. 다시는 집에서 치킨 만들어 먹지 말자."

우리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난히 기온이 낮아 몹시 추웠던 그날 저녁, 밤늦게까지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 두어야만 했다.


금요일이 돌아왔다.

늦은 저녁 대신 치킨을 시켜먹자는 아내에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치킨이 생각나지 않는 금요일이라니 왠지 이상했다.

아내는 지난번에 부족했다며 꼭 먹고 싶다고 했다.

결국 OO치킨 두 마리를 배달시켰다.

아이들이 자라고 처음으로 치킨 한 마리를 그대로 남겼다.

아이들도 아내도 나도 치킨을 거의 먹지 못했다.

요전 날 뱃속에서 꿈틀대던 느끼함이 다시 찾아온 듯했다.

아내가 말했다.

"아, 올해는 더 이상 치킨 시켜먹지 말자. 2021년 치킨은 이걸로 끝!"

우리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뜬금없이 만두를 집에서 해 먹어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인스타그램 보니 만두소 만들기가 생각보다 무척 쉽단다.

"매번 글감 줘서 고맙긴 한데 만두는 건들지 말자, 둘째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잖아."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내 바보, 나는 겁쟁이랍니다.

미각을 잃고 행복을 얻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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