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그림?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by 조이홍

이번에 제주에 한 달간 머물면서 그간 모르고 있었던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새로 알게 되었다. 제주 좀 안다는 자만심은 진작 깨져버렸고 발견의 재미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이제 살짝 다른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분간 이렇게 오래 제주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을 텐데, 다음에 제주에 여행을 오면 어디를 다시 와야 할지 고민되었다. 행복한 고민이지만 좀 난감하긴 했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도 그렇고, 특히 김창열 미술관도 그런 곳 중의 하나였다.


솔직히 아내가 제주도립 미술관에 가자고 했으면 나는 선뜻 그러자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과 바다에서 놀고 있을 테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관람하고 오라고 했을 것이다. 국립미술관도 아니고 뜬금없이 도립 미술관을 왜 가지? 김창열은 또 누구고? 제주에 가봐야 할 곳이 얼마나 많은데 일부러 가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제주현대미술관에 왔다가 우연히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을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또 우연히 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을 가게 되었다. 두 번의 우연히 겹쳤으니 대단한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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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립 김창열 미술관은 아주 세련된 건물이었다. 도립인데 건물은 꽤 수준 있네 하며 들어갔는데 입장료가 있다. 뭐야 그냥 갈까 하다가 온 김에 보고 가자는 마음으로 입장권을 샀다.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그리고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아내와 나는 깜작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작품이었어? 이 작품이 사진이 아니고 그림이었어? 그랬다. 이곳은 작가는 몰라도 우리에게 꽤 익숙한 물방울 작품이 전시된 곳이었다. 물방울 작가 김창열 화백이 제주시에 무상 기증한 22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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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 화백은 6.25 전쟁으로 친구들과 어린 동생의 죽음을 경험했다. 1965년 미국으로 그림 유학을 갔지만 곧 파리로 건너갔다. 파리 시절 그는 가난해 캔버스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했다. 그려 놓았던 그림들 중에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의 뒷면에 물을 뿌려 먼저 그렸던 그림을 떼어낸 후 다시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햇살이 캔버스 뒷면에 맺힌 물방울을 비추던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다른 캔버스에도 이렇게 저렇게 물을 뿌리자 각각 다른 형태로 영롱하게 물방울이 떠오른 것이다. 물방울 그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김창열 화백은 한 인터뷰에서 물방울 영감은 하루아침에 떠오른 것은 아니고 자신이 표출하고 싶은 한국의 상처가 아픔, 슬픔 등의 하나의 원이 되었고 그것이 결국 물방울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하였다. 예술작품을 보는 안목은 없지만 물방울 그림을 가만히 보다 보면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이 느껴졌다. 준, 큐 형제는 물방울을 보고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작은 물방울 하나만 가슴에 남겨 두면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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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렬 미술관을 나와 마을 입구로 걸어가다 예쁜 2층 식당을 발견했다. 돈가스 전문점이었다. 몇 시간 동안 예술의 세계에 푹 빠져있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점심때도 놓쳤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깨끗하고 세련된 음식점이었다. 나와 큐는 흑돼지 돈가스를, 아내와 준은 보말 볶음밥을 주문했다. 돈가스 맛집이었다. 나와 큐는 너무 맛있어 돈가스 소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아내와 준도 볶음밥을 싹 다 비웠다. 내가 돈가스가 맛있었다고 칭찬을 하자 아내는 배가 너무 고파서 그렇지 맛은 별로인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은 이솝우화에 나온 여우와 포도 이야기 아닌가. 흑돼지 돈가스를 주문하지 않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내는 귀엽기까지 했다. 그러게 돈가스 전문점에서 돈가스를 주문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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