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 수학능력 시험 보는 꿈을 꾸는 이유가 궁금했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 평생 꾸는 악몽은 아마도 '재입대'가 아닐까 싶다. 꿈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분명히 복무 기간을 끝마치고 전역했는데, 실수록 누락되었다며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몇 달까지 부족한 군 생활을 마저 채우란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계급이 병장이라 군생활이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꿈속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꿈속에서도 분명히 '행정적 착오'였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잘못되었다고 항의하기는커녕 순순히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걸 보면 군대가 남자에게 얼마나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곳인지 새삼 깨닫는다. 이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다. 어떤 때는 이등병부터 새로 시작하란다. 일명 '왕고'때 막내였던 후임이 내무반 최고 선임이 되었는데, 그 내무반 막내로 군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최악 중에도 최악인 꿈이다. '미치고 환장할' 지경인데 어디 하소연도 못한다. 병장 마인드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내무반에 각 잡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정말 끔찍했다.
몸서리치는 재입대 꿈도 40대 중반을 넘어가니 더 이상 꾸지 않았다. 군대라는 그늘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졌다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이제 군대에 재입대하는 꿈조차 꾸지 못할 만큼 나이 먹은 걸까? 아마도 '시원섭섭하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졌나 싶었다. 그래도 여전히 위로가 되는 꿈이 있다. 정말 위로가 되는지는 약간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적어도 아직은 청춘이구나 느낀다는 점에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고마운(?) 꿈이다. (청춘은 청춘이라고 강조하지 않으니 이것도 참 애처롭다.)
시험 과목은 언제나 둘 중에 하나였다. 수학과 국어. 수학 시험은 학력고사 문제였다. 문항수도 학력고사와 같았지만, 주관식과 객관식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지독히도 우리를 괴롭혔던 바로 그 숫자들이었다. 학력고사 세대지만 기묘하게도 국어 시험은 수능 문제를 푼다. 지문이 무척 많고 길다. 형식도 문항수도 불수능 그대로였다.
일찍이 수도자(修道者) 보다 어렵다는 수포자의 길을 택한 나로서는 수학 문제를 하나도 남김없이 푼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객관식을 먼저 풀면 주관식 풀 시간이 없었고, 주관식을 먼저 풀면 객관식 풀 시간이 부족했다. 수학 시험 '필승 전략'은 자연스럽게 주관식 먼저 풀고, '찍기' 가능한 객관식은 나중에 푸는 것이었다. 운 좋게 찍은 문제가 정답이 많을 경우, 전교 석차 앞자리가 달라졌다. 물론 그런 행복은 고등학교 생활 통틀어 한두 번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학 시험 꿈은 언제나 그때 현실을 반영했다. 주, 객관식 어느 쪽을 먼저 풀어도 한쪽을 다 풀면 시험 시간이 끝났다. 풀지도 않은 시험지(답안지)를 걷어 갔다. 그때의 참담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우매한 것인지 요령이 없는 것인지 꿈의 결과는 언제나 똑같았다. 가끔 꿈속에서 '맞아, 이건 꿈이었지!' 인지했지만, 대부분 그 절망감은 고스란히 가슴에 남았다.
다른 어떤 과목보다 자신 있었고 잘하기도 했던 국어는 학력고사 문제 대신 수능 문제가 꿈에 나온다. 최근에 새롭게 꾸게 된 꿈인걸 보면 아마도 수능 국어 문제를 풀면서 시작된 연(緣) 같다. (그전에는 수학 시험 보는 꿈만 꾸었으니) 이 꿈은 항상 마지막 지문을 남겨 두고 시험이 끝난다는 설정이다. 보통 마지막 지문에도 서너 문제가 딸려 있으니 무척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찍을 시간조차 없어 그대로 답안지를 제출한다. 가끔 시간이 남아 있어도 마지막 지문은 아무리 읽으려고 노력해도 읽어지지 않는다. 첫 문장만 계속 반복하고 더는 읽지 못한다. 결국 모든 문제를 풀지 못한다. 마치 풀 수 있는 문제에 총량이 있는 것처럼.
꿈에서 깨면 시험 볼 일 없는 나이가 되었으니 다행이다 싶다가도, 시험이 삶에서 가장 큰 위기였던 그 시절이 못내 그리웠다. 되돌아갈 수 없으니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씨앗 안에 커다란 나무로 자랄 가능성이란 걸 품고 있던 시기였다. 누구는 소나무가, 누구는 전나무가, 또 다른 누군가는 단풍나무나 은행나무로 자랄 터였다. 예나 지금이나 기성세대, 혹은 교육제도, 는 나무의 특징이나 냄새, 잎의 색깔이나 모양새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좋은 목재'를 길러내는데 최선을 다했다. 철부지 어린 나이에 그토록 중대한 삶의 변곡점을 감당해야 했던 우리의 청춘이, 오늘의 청춘들이 불쌍했다. 조금 더 화사해도 좋을 봄날이었다. 조금 더 작열해도 좋을 여름날이었다. 조금 더 울긋불긋해도 좋을 가을날이었다. 조금 더 새하얘도 좋을 겨울날이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러지 못했다.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라는 융 심리학 책을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었다. 그 어렵다는 융 심리학을 비교적 쉽게 풀어쓴 책이었다. 이 책에서 '그림자'란 선택되지 않아 '살지 못한 삶'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때 꿈이 소설가라 진학하고 싶은 과는 국문과였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경제학과나 경영학과에 진학해 졸업 후 은행원이 되었다면 그/그녀의 소설가라는 꿈은 무의식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윤리와 규범을 중요시하며 사회화를 따르는 자아(의식)는 일정 기간까지는 무척 강력해 그림자를 누를 수 있지만, 그 기간을 넘어서면, 예를 들어 은퇴를 고려하는 나이, 무의식 속 그림자가 어떤 형태로든 그/그녀에게 영향을 끼친다. 알 수 없는 분노, 불만, 슬픔, 무기력, 공허함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자아와 통합해 '더 높은 자기'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책 본문 중에 '꿈 작업을 통해 무의식과 교감하다'라는 챕터가 있다. 꿈을 해석(해몽)하려 하지 말고 내용에 집중해보라는 것이다. "꿈은 고유의 언어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정신 작용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꿈 언어는 은유와 상징의 결합이기에 그 이미지 역시 '시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꿈을 기록하고 소리 내어 읊어보라고 권유한다. 꿈속 풍경 탐색을 통해 무의식이 자신에게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보라는 것이다.
시험 볼 나이도 아닌데 왜 여전히 시험 보는 꿈을 꾸는 걸까? 20~30대에는 잘 꾸지 않던 꿈을 오히려 40대에 들어서면서 부쩍 더 자주 꾸게 되는 이유가 뭘까? 나에게도 '살지 못한 삶'이 있었던 걸까? 내 그림자가, 내 무의식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졌다. 당분간 '꿈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꿈속 풍경을 최대한 자세히 그려보려고 한다. 의식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자기 지분을 나눠주어야 하니까. 그래도 내 그림자가 전하고 싶은 말을 좇아가 보고 싶다. 내 그림자의 목소리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