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크리스마스는 책 나눔으로
책을 읽지 않는, 덜 읽거나 못 읽는 이유가 백만 하고도 스물두 가지가 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책 읽기 좋아한다고 나름 자부하는 나 역시 독서보다 다른 매체에 정신 팔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내게 책 읽는 이유는 분명했다. 재미있고 때로는 삶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 주기도 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지만,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노력하는 시간까지도 좋았다. 이토록 좋은 책을 두고 근래 들어 다른 매체에 혼을 쏙 빼앗기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과연 어떤 매체가 삶에 유익한 독서 시간을 가로채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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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세 매체가 전적으로 내 독서 시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다. 브런치에 머무는 동안에는 내 글을 쓰기도 하지만, 주로 다른 작가님들 글을 읽는다. 광의의 의미에서 '독서'라 불러도 좋으니 백 번 양보해 제외하더라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릴스)은 독서 활동을 지독히 방해한다. 저항해도 소용없다. 언제나 패했다. 그렇다면 이 두 매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하나는 영상 매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별다른 노력(input) 없이도 큰 즐거움과 재미(out)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너무 재미있어서 온종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독서는 끊임없이 두뇌를 자극하는, 칼로리가 많이 소모되는 활동이다. 장시간 집중하면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다. 동영상 매체는 시각 자극만 수용하고 두뇌 활동은 최소화하다 보니 input 대비 output이 뛰어나다. 우리 몸의 에너지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보다 더 효율적인 매체는 없다. 그러니 일하기보다 놀기 좋아하는(이것은 최초의 유전자가 생겨난 이래 DNA에 각인된 불변의 법칙이다) 우리 뇌가 '책 읽기'와 '동영상 매체 보기'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인간은 결코 자기 뇌의 통제 범위 밖에 머무를 수 없다.
독서 시간을 가로채는 동영상 매체를 비난하거나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대함마저 느낀다. 동영상 매체는 역사상 아무도 하지 못한 한 가지 일을 아주 훌륭히 해냈다. 그것은 지금까지 수용자였던 일반인(대중)을 창작자(크리에이터)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場)를 만들어 주었고, 게다가 경제적인 이익도 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전까지 소수가 독점하던 창작이라는 특별한 재능(?)을 어느 순간부터 대중도 마구 발현하게 되었다. 마치 대중에게 재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창의적이고 기발한 창작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까지 사회의 발전 방향과 이토록 궤(軌)를 같이 하던 매체가 있었던가? 브라보, 유튜브! 릴스! 틱톡! (동영상 매체의 단점도 결코 적지 않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탈을 비롯해 출판업계 종사자나 스타트업이 '책 읽는 사람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플랫폼)'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단순 독서에 머물지 않고, 독서 활동이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고, 때로는 독자가 창작자도 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정부가 나서도 좋겠다. 국민들이 책 읽지 않는다고 걱정만 하지 말고, 하석상대(下石上臺)식 정책으로 실효도 없는 예산만 낭비하지 말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독서 플랫폼 하나 제대로 만들어 주어도 좋겠다. 물론 브런치팀에서 고민해도 좋다.(뭐, 가능성은 없겠지만) 아무튼, 다시 한번 '책 권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독자에게만 책임을 돌리면 <화씨 451>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지난해, 움베르트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라는 책으로 <책의 여행>을 진행한 바 있다. 책의 흔적을 따라가지 않기로 했으니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알 수는 없다. 그래도 나를 떠난 책이 어딘가로 끊임없이 항해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았다. 이제 크리스마스도 성큼 다가왔으니 <책의 여행 시즌 2>를 진행해 볼까 한다.
이번 책은, 송구하지만, 내가 참여한 에세이집 <수진 씨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이다. 책의 여행이란 무척 간단하다. 이 글을 읽고 '작가에게 제안하기'로 참여 의시를 밝힌 한 분께 책을 보내드릴 예정이다. 다만, 독서가 끝난 후 책을 소장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내야 한다. 말 그대로 책을 여행 보내는 것이다. 책 면지에 간단하게 읽은 소감을 적어도 좋고 자기만의 싸인, 문장을 남겨도 좋다. 다만 누군가에게 책을 전달할 때 아래 두 가지를 반드시 고려해 주면 좋겠다.
1) 나는 모르고 상대방만 아는 사람에게 책 전달하기 (책이 내 주위에 머무르지 않고 멀리 여행할 수 있도록)
2) 책 전달할 때 작은 선물도 함께 증정하기 (기쁜 마음으로 책 여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나 역시 참가자에게 아내 그림으로 만든 머그잔을 보내드릴 계획이다. 이번에는 선착순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멀리 사는 분께 보내드리려고 한다(해외에 계신 분은 제외). 책이 멀리 여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책 권하는 사회', '책 읽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책 선물을 하지 않았다. 가격을 떠나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책을 선물하고, 책을 선물 받는 순간이 행복한 경험이면 좋겠다. 연말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술 한 잔?'도 어렵게 되었다. 이번 연말에는 술 권하는 대신 책을 권해보면 어떨까? 술도 좋지만, 책도 만만치 않게 좋다. (술보다 책이 더 좋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