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情 사이
결혼 20년 차 우리 부부는 대한민국 부부가 대부분 그렇듯이 참 허물없이 지낸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줄곧 잉꼬부부로 지낸 것은 아니지만, 큰 위기 없이 그럭저럭 잘 지냈다. 흥미롭게도 20대,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에는 분명히 남성과 여성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동성(同性)이 되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그 성(性)이 전적으로 남성도, 전적으로 여성도 아닌 새로운 성이라는 점이다. 이 정도 오래 살면 누구나 공감하거나 어렴풋이 그 존재를 느꼈을 테지만, 아직 그 누구도 이 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지 못했으니 '제4의 성'이라 부르도록 하겠다. (제3의 성은 이미 많은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인정했기에)
'제4의 성'의 특징은 기존 남성과 여성의 장점은 모두 흡수하면서 단점은 스스로 절멸시켰다는 점이다. 아내는 육체적으로 강해졌고 남편은 감성적으로 강해졌다. 형광등을 갈거나 못 하나 박는 일도 아내가 나서서 처리하는가 하면, 언제부턴가 영화나 연속극을 보며 눈물 훔치는 건 남편 몫이 되었다. 집안에 나방이 들어오면 아내는 티슈 두 장을 꺼내 녀석을 처리하고, 남편은 아이들 안전을 위해 함께 자리를 피했다. 아내는 초콜릿 복근이 생겼고, 남편은 뱃살에 지방층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아내는 수영대회며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때 남편은 아이들 점심은 뭘 먹일까 고민했다. 아내는 점점 바깥일이 많아졌고, 남편은 점점 집안일이 많아졌다. 신체적·체력적 우위는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이미 균형점에 닿았으나 언제 역전되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제4의 성'의 또 다른 특징은 서로를 향한 엄청난 공감 능력이다. 염화미소(拈華微笑), 불립문자(不立文字), 말하지 않고도 통(通)하는 사이가 되었다. 유발 하라리 표현을 빌리면 '호모 데우스' 급이다. 신급 능력을 가진 인간 말이다. 미래에는 이 제4의 성이 신(新) 인류가 될지도 모르겠다. 각 성의 장점만 취했으니 개체를 생존 도구로 여기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좋은 경찰 & 나쁜 경찰' 역할극을 충실히 수행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나쁜 경찰이 되면 아내는 언제나 좋은 경찰이 되어 아이들을 품어 주었다. 때로 아내가 아이들에게 악마가 되면, 어느새 남편이 천사가 되었다. 그러나 제4의 성으로 거듭난 요즘, 더 이상 역할극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나쁜 경찰과 더 나쁜 경찰만 있을 뿐. 아내가 아이들에게 잔소리 한 스푼을 얹으면, 그 위에 남편이 또 한 스푼, 다시 아내가 또 한 스푼을 얹었다. 그렇게 쌓인 잔소리가 태산을 이루었다. 어찌나 손발이 척척 맞는지 마치 대본에 맞춰 연기 연습을 한 사람들 같았다. 정치 성향, 취미나 기호도 어느새 똑같아졌다. 책을 멀리하던 아내가 최근에 '독서 모임'을 시작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제4의 성'의 마지막 특징은 두 사람 외모가 매우 비슷해진다는 점이다. 인생의 전반부는 각기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땅을 디디며 살았다. 성별을 떠나 외모가 다른 게 자연스러웠다. 결혼 후, 인생 후반부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오랜 시간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집에서 잠들고 같은 대기에서 숨을 쉬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꿈을 꾸었다. '부부가 닮았다'는 말이 그저 듣기 좋은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정말 닮아가기 시작했다. 눈매며 콧날, 입술이며 얼굴형이 정말 친남매처럼 변했다. (아내는 동의하지 못할 터) 그래도 양심에 걸려 차마 '쌍둥이처럼'이라고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아무튼, 처음 보는 사람들도 두 사람이 부부라는 사실을 눈치챌 정도니 닮아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이는 '거울 효과'가 극대화되어 행동과 표정이 닮아가다가 외모까지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때로는 형제처럼, 때로는 자매처럼 정(情)으로 사는 '제4의 성' 관계지만,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심쿵하는 순간 말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참, 나는 종교가 없구나!) 잠버릇이 험한 아내는 종종 이불을 걷어차며 잔다. 어쩌다 잠에서 깨어 그 모습을 보면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이불을 가져와 덮어 준다. 그런 내 모습에 '아, 내가 아직도 이 사람을 사랑하는구나!'라고 느끼곤 한다. 그런가 하면 아내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끼는 순간도 있다. 아내가 그 고운 손으로 내 발톱을 깎아줄 때다. 한때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작업했지만, 요즘에는 기꺼이 맨손으로 나선다.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도 한몫했다) 발이 유난히 못생긴 데다 군 생활에서 얻은 불치병, 아내는 무좀이라 하고 나는 습진이라 우기는,으로 다소 지저분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스레 발톱을 정리해 준다. 가끔 내 발이 자기 몸에 닿으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더러운 발 당장 치우라!" 사자후를 쏟아내면서도 남편 발톱이 조금이라도 지저분해 보이면 '장비'를 챙겨 와 기꺼이 맨손으로 작업을 벌이는 것이다. 정말 이런 츤데레가 없다니까….
누군가가 그게 情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속시원히 답할 수는 없다. 어린 장금이가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말했던 것처럼, 사랑이라고 느껴지니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매일 사랑하며 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정이나 의리로 살고 싶지도 않다. 지금처럼 사랑과 우정 사이를 오가며 제4의 성으로 오래도록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