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에 들러 책 한 권 사 보자
운 좋게 작가로 참여해 출간한 코로나 극복 에세이집 <수진 씨는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를 드디어 여행 보냈다. 많은 브런치 작가님 & 독자님이 참여해 주시리라는 예상과 달리 신청자가 한 분도 없어 좀 슬펐다. 나와 가장 멀리 사는 작가님은 어떤 분일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 네이버 지도를 활용해야 하나, 구글 지도를 사용해야 하나 한바탕 설레발쳤더랬다. 난감한 상황에 혼자 무척이나 민망했다. 그래도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포기하지 않고 평소 교감이 있던 브런치 작가님께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을 드렸다. 천만다행으로 작가님이 흔쾌히 동의하셔서 두 번째 책을 여행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글쓰기'라는 소재로 마음과 위로를 주고받는 벗이 되었으니,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책은 브런치 작가님들 사이를 항해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 손을 떠난 책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니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지만….
<책의 여행>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같은 책을 읽는다는 건,
왠지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아집니다.
다음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이 책을 받게 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재미있게 읽는 것이 하나이고,
독서를 마친 후, 즐겁게 여행 보내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이 책이 결국 어디에 닿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끝없이 항해하기를 바랄 뿐.
세상에는 아직 책의 지혜, 지식, 통찰력, 그리고 위로가 필요할 테니까요.
이 여행에 동참하시겠습니까?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당신께 행운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책을 여행 보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원칙을 깨고 책 면지에 위와 같은 <책의 여행> 취지를 몇 자 적어두었다. 책의 존재 이유, 즉 사람들에게 읽히기 바랐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바람을 덧붙인다면 이를 계기로 다른 분들도 각자만의 '책의 여행'을, 사실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떠나보내면 좋겠다. 지하철 한 량에서, 만원 출퇴근 버스에서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2020년 8월 17일이 임시 공휴일로 확정되면서 '사흘'이라는 단어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휴일은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쓰나'라는 문의가 빗발쳤고 검색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성인 문맹률은 1% 대지만, 문해력은 꽤 심각한 수준이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OECD 국가 대비 현저히 떨어진다. ('EBS 당신의 문해력'에서 인용) 책 읽기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나은 대안은 없다. 책이 아직 우리 사회에 필요한 까닭이다.
<책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나섰다면, 염치없지만, 한 가지 더 당부드릴 게 있다. 여행 보낼 책 한 권은 온라인 서점말고 가까운 동네 책방을 이용하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을 포기하고 동네 책방을 이용할 경우 감당해야 하는 손해는 책값의 최대 10% 정도다. 보통 책 한 권이 1만 5천 원 정도 하므로 1천5백 원인 셈이다. 보통 동네책방도 5% 정도 할인이나 적립은 운영하니 최대치가 10% 일뿐, 실제로는 그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얻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에드워드 홉스의 책 <배송 추적>에는 우리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하나의 이동 경로를 대략 4만 8천 km라고 예측했다. 이 과정에서 인권 문제, 이산화탄소 배출을 포함한 환경오염 문제, 부의 불평등 문제 등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되짚어 보면 커피 한 잔 무게가 그저 커피 한 잔이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온라인 도서 주문도 따져보면 도처에 고민해야 할 지점들이 있다. 일전에 이곳에 올리기도 했지만, 총알 배송이나 새벽 배송에 누군가는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거대해진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한 전력 사용량, 뜨거워진 시스템을 일정 온도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 전력 사용량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 등이 발생하는 것 역시 고민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하루쯤, 아니 한 번쯤 온라인 주문 말고, 가까운 동네 책방을 이용해 보기를 권한다. 동네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여러분은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환경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고작 한 번으로? 그렇다. 한 번의 경험이 중요하다. 게다가 자동차 대신 튼튼한 두 다리나 자전거를 이용한다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 몸에도 좋고, 지구에도 좋은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대부분 동네 책방은 '책'만을 판매하지 않는다. '책 판매'만으로는 책방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동네 책방의 숙명이 오히려 동네 책방을 멋진 곳으로 만들어 주었다. 동네 커뮤니티 역할이나 문화 살롱은 기본에 와인이나 몰트 위스키를 맛볼 수도 있다. 내게 필요한 인문 강좌나 글쓰기 모임, 독서 모임 등을 발견하는 기쁨은 덤이다. 동네 책방은 더 이상 책만 파는 곳이 아니다. (물론 그런 곳도 있지만) 이렇게 멋진 동네 책방을 애용하지 않는 건 자신에게 죄를 짓는 일일지도 모른다.
2021년이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연초에 세운 계획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 스스로 돌아볼 때다.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이 시점에서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았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 동네 근처, 회사 근처에 있는 동네 책방에 들러 책 한 권 사 보자. 그리고 그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보자. 지금 막 2021년을 근사하게 마무리할 묘책을 여러분께 아무 조건 없이 알려 주었다. 우리는 브런치에서 만나 '벗'이 되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