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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9. 2019

미술작품의 색다른 체험 빛의 벙커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제주에는 옛 회사 동료들이 살고 있다. 지금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언제라도 연락해 소주 한잔 할 수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제주에 머무르는 동안 전화 통화만 하고 정작 만나지 못했다. 연락하기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에 내려오면 이것저것 많이 부탁한다는데 나라도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제주 사람에게 이곳은 그냥 사는 곳이다. 자기가 사는 동네가 아니면 관광지, 맛집 정보에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다른 지인을 통해 물어보거나 인터넷에 나온 정보를 보고 소개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 가능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도 딱 한번 관광지 소개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준, 큐 형제와 비슷한 연배의 아이를 둔 후배였는데 제주에서 아이들과 가볼 만한 관광지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답변이 왔다. 나는 당연히 바다나 계곡 같은 곳을 기대했는데 뜻밖에도 ‘빛의 벙커’를 추천해 준 곳이다. 요즘 제주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라고 했다. 마침 이곳은 클림트 전시를 진행 중이라 아내도 콕 찍어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가보기로 했다.


  사실 전시장 이름이 벙커라고 해서 이름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지 이곳이 실제 벙커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빛의 벙커는 서귀포시 성산에 있는 옛 국가기간 통신시설로 오랫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실제 벙커였다. 축구장 절반 크기의 대형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흙과 나무로 덮어 산자락처럼 보이게 위장되어 있다. 이런 시설이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 공기 순환 방식으로 연중 16℃의 서늘한 온도가 유지되고 있고 벌레나 해충도 없다고 한다. 빛의 차단과 방음효과가 완벽하니 이런 미디어 아트 전시장으로 사용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빛의 벙커 입장료는 조금 비싼 편이다. 어른 15,000원, 청소년 11,000원, 어린이 (만 7~12세) 9,000원이다. 암막을 걷고 입장하니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 아미엑스 (AMIEX, Art & Music Immersive Experience)라는 방식으로 수 십 대의 빔 프로젝트와 스피커에 둘러싸여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었다. 천장, 벽면, 바닥 할 것 없이 모든 공간이 전시장 역할을 했다. 마침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키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전체가 황금빛 물결이었다. 음악도 작품과 잘 맞아떨어졌다. 미디어 아트라는 것을 모르고 들어갔던 준, 큐 형제는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들은 조금 무서울 수도 있다.) 물론 금방 적응하고 전시장을 마음껏 활개 치며 관람을 했다. 아내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챙겨 와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다. 무료였는데 가수 요조의 목소리였다. 상영시간은 30분이었는데 금방 지나갔다. 우리는 클림트 작품으로만 구성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9세기 후반 비엔나의 위대한 화가였던 한스 마카르트와 에곤 쉴레의 작품도 함께 상영한 것이었다. 사전에 이런 배경지식을 알고 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좀 아쉬웠다. 클림트 편이 끝나면 훈데르트 바서라는 비엔나 출신 화가의 작품도 10분간 상영되었다.  

  집에 가는 길에 전시가 어땠는지 준, 큐 형제에게 물어봤더니 노란 색감이 너무 예뻤다고 했다. 처음 입장했을 때의 임팩트가 컸던 것 같다. 사실 나도 처음 본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 준, 큐 형제에게 황금빛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노란색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그거면 충분했다. 올 12월에는 빈센트 반 고흐 전시가 시작된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내와 눈 덮인 한라산에 도전해 보기로 했는데 겨울 제주를 찾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전시 준비로 빛의 벙커는 10월 28일부터 12월 초까지 휴관이다.)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클림트 이야기>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는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시대 비엔나의 호화로운 예술문화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14살 때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해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은 후 건축물 벽면의 회화 작품 등을 제작한다. 이후 초상화나 우의화 등 장식과 독립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점점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킨다. 19세기 말 영국, 프랑스 등에서 벌어진 인상파와 같은 진보된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들을 접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오스트리아의 미술 경향과 미술 협회의 보수성에 반발한다. 반 아카데미즘 운동을 하면서 1897년 빈 분리파(제체시온)를 결성하고 아르누보 미술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빈 대학의 요청으로 그린 3점의 대학 회화는 화풍 역시 기존과 달랐지만 담고 있던 주제 때문에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1905년 본래의 취지에 충실하지 못한 빈 분리파를 탈퇴했으나 이것이 그의 황금시대를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모자이크와 장식적인 패턴, 금을 사용하는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매우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에로틱한 요소와 강렬한 상징주의 등의 요소가 강하게 드러났다.   

   

  황금과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 그만의 독특한 황금 스타일의 시작을 알린 작품인 <유디트>, 빈 분리파 혁명의 상징이자 가장 유명한 작품인 <키스>, 자신의 후원자를 그려 선물한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이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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