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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9. 2019

한라산 등반기   

탐라유람기 아들 둘과 제주 한달살이 이야기

산책하듯 오른 한라산 영실코스     


  한달살이 초반에 결행했던 올레 7코스 걷기 덕분에 한라산 탐방 코스의 난이도를 조정하기로 했다. 원래 탐방 경험이 있는 영실 코스와 성판악 코스는 제외하고 가장 힘들다는 관음사 코스를 공략하려고 했다. 왕복 10시간 이상 걸리는 관음사 코스는 등산을 자주 하는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코스지만 이전 두 번의 등반 경험으로 한껏 우쭐해진 우리에게는 도전해 볼 만한 코스였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너무 힘든 산행은 한창 자라는 준, 큐 형제의 몸에 무리를 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미 올레 7코스 걷기를 통해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기에 한라산 탐방은 가볍게 하기로 한 것이다. 

  고민 끝에 영실 코스를 다시 오르기로 했다. 백록담 정상을 볼 수 없지만 거리도 짧고 코스가 쉬워 탐방하기에 딱 좋았다. 특히 표고 1500∼1700m에 펼쳐진 완만한 평원인 선작지왓의 풍광은 너무 아름다워 꼭 다시 보고 싶었다. 영실 코스는 탐방 안내소부터 윗세오름까지 3.7km, 윗세오름에서 남벽분기점까지 2.1km로 총 5.8km로 약 5시간 코스였다. 지난 탐방 때에는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컵라면을 팔아 두 개나 먹었는데 이제는 폐쇄되어 그 맛을 볼 수 없게 된 것은 너무 아쉬웠다. 매워서 평소에는 입도 못 대던 큐도 하나를 뚝딱 해치웠을 정도로 산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 맛은 최고였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지난번에는 영실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했는데 이번에는 영실휴게소에서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을 잘못 검색한 탓이었지만 40분 정도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휴게소를 출발해 50분 정도 걷고 나면 병풍바위와 오백장군바위의 웅장한 비경을 만나게 된다.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동쪽 제주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에 왔다. 비 내린 다음 날이라 공기가 맑고 깨끗해 멀리까지 잘 보였다. 오른쪽으로 제주시, 왼쪽으로는 서귀포시가 보였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제주시 아파트 단지 이름도 보일 정도로 또렷하게 보였다. 애월과 한림의 크고 작은 오름들, 산방산과 송악산까지 뚜렷하게 보였다. 조금 더 오르니 구상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이곳 구상나무는 바람이 많은 고산지대에서 자란 탓에 줄기에 굵은 가지가 촘촘하게 붙어 있으면서 높게 자라지 않는다. 뭍에서 자라는 구상나무는 밋밋하게 크게 자라며 가지가 듬성듬성 난다고 한다. 이렇게 같은 나무라도 자연환경에 적응해 다른 모습을 하는 것이다. 다음에는 아고산(고산대와 산지대 사이의 수직분포대) 식물의 천국 선작지왓이 나왔다. 봄이면 진달래와 산철쭉이 지천에 깔린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산 정상 부근에 이런 평원이 있다는 것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한라산의 정취에 흠뻑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오늘도 아내는 혼자 앞장서 갔다. 우리가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충분히 쉬고 남벽분기점으로 향하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준, 큐 형제와 나는 준비해 간 간식과 주먹밥을 먹고 남벽분기점으로 향했다. 아까만 해도 해가 쨍쨍하고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는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들었다. 한라산 정상 부근의 날씨는 아내의 장운동과도 같았다.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서둘러 남벽분기점으로 향했다. '비상사태 발생' 문자가 온 것이 이때였다. 남벽분기점에 도착한 아내의 장 활동이 또다시 휴화산에서 활화산으로 전환되는 단계라고 했다. 윗세오름 대피소로 시급하게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중간에서 만나 함께 돌아오기로 했다. 남벽분기점까지 가지 않으니 준, 큐 형제는 좋아하는 눈치다. 그래도 함께 한라산에 올랐는데 온 가족이 윗세오름에서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쯤은 있어야지 하는 마음에 돌아오기로 했다. 아내 장 활동 덕분에 한라산 탐방이 조금 편해졌다. 


  등산을 하던 중에 큐가 넘어졌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제법 아플 것 같았다.  조심하지 않은 큐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준이 큐를 부축해 주며 함께 걷기 시작했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이 정도로 사이좋은 형제는 아니었는데? 잘 놀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잘 싸우기도 해 엄마, 아빠의 속을 상하게 하는 요즘의 준, 큐 형제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그래도 동생이 아플 때 도와주는 형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사이좋게 지내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것 같더니 필요한 상황이 오면 저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가을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한라산과 이야기>  

   

  한라산은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된 순상화산(楯狀火山)이다. 화산 폭발 당시 용암의 점성이 낮아 평탄하게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동서방향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남북방향으로는 다소 급한 경사를 이루게 했다. 한라산의 지형은 풍화나 침식작용보다는 백여 차례에 걸친 화산의 분출과 융기에 의해 비교적 원지형이 생생하게 노출된 유년기의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과 더불어 서안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영실과 병풍바위, 오백나한, 왕관바위, 삼각봉, 선녀폭포, 탐라계곡 등의 절경을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용암이 갖는 주상절리(柱狀節理)의 발달과 풍화에 의한 지형적인 특징으로 한라산은 한반도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한라산은 해발 1,950m의 높이로 제주도의 중앙부에 솟아 있다. 이 중 국립공원은 정상 화구호인 백록담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4.4km, 남북으로 9.8km이며 면적은 153.386㎢이다. 1966년 10월 12일에 백록담을 중심으로 한 산록 지대가 천연기념물 제182호(한라산 천연 보호구역)로 지정되었고, 1970년 3월 24일 설악산 및 속리산과 함께 20개 국립공원 중 일곱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2002년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08년에는 물장오리오름 산정화구호 습지가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한라산 국립공원은 모두 7개의 탐방로를 운영하고 있다. 

  1) 어리목 탐방로 : 어리목 탐방안내소 ~ 남벽분기점 (6.8km, 3시간) 

  2) 영실 탐방로 : 영실 휴게소 ~ 남벽분기점 (5.8km, 2시간 30분)

  3) 성판악 탐방로 : 성판악 탐방안내소 ~ 정상 (9.6km, 4시간 30분)

  4) 관음사 탐방로 : 관음사지구 야영장 ~ 정상 (8.7km, 5시간)

  5) 돈내코 탐방로 : 돈내코 탐방안내소 ~ 남벽분기점 (7km, 3시간 30분)

  6) 어승생악 탐방로 : 어리목 탐방안내소 ~ 어승생악 (1.3km, 30분)

  7) 석굴암 탐방로 : 충혼묘지 주차장 ~ 석굴암 (1.5km, 50분)


<아빠가 알아두면 좋을 영실 오백장군 전설 이야기>    

 

  설문대할망이 키가 한라산만한 설문대하르방과 혼인해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일 년이 지나면서 아들을 낳기 시작하더니 연이어 오백 형제를 낳았다. 오백 아이들도 부모를 닮아 기골이 장대하였다. 흉년이 든 어느 해 식구도 많은 데다가 대식가들이라 끼니를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설문대할망이 아들들을 불러 모아 한라산에 들어가 양식을 구해오자고 했다. 혼자 남은 하르방이 남은 양식을 털어 죽을 쑤고 있는데 곶자왈에서 돼지가 갑자가 튀어나와 하르방 다리 사이로 뛰어들었다. 하르방은 놀라 자빠지면서 그만 팔팔 끓던 솥 속으로 풍덩 빠져 버렸고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렸다. 사냥을 하고 돌아온 아들들이 배가 너무 고파 허겁지겁 죽을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막내아들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뼈다귀를 발견하고 아버지가 빠져 죽은 것을 알았다. 막내아들은 슬피 울며 달려갔다. 달리다 보니 고산리 차귀도였다. 그곳에 앉아 한없이 울다가 바위가 되었다. 그 바위가 장군바위다. 나머지 아들들도 아버지 육신을 먹었다는 것을 깨닫고 뼈를 부여잡고 슬피 울다가 그 자리에 굳어 영실기암이 되었다. 사람들이 이 기암괴석을 오백장군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영실에는 사백 아흔아홉 개의 장군바위가 있고, 하나는 차귀도에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이다. 남편과 아들들을 잃은 설문대할망은 슬픔에 빠져 하염없이 울다가 한라산의 물장오리에 빠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물장오리는 밑이 터진 연못으로 한라산 북쪽 삼성혈과 연결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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