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 부자

1월 14일, 일기예보와 이문세, 그리고 정지상

by 조이홍

아내는 '지지리 궁상'이라고 싫어하는 노래, 발라드.

나는 왠지 어려서부터 발라드 곡을 참 좋아했다.

사전에는 '대중음악에서, 감상적 곡조에 사랑을 주제로 서정적인 노래'라고 설명되어 있더라.

어원은 '춤춘다'는 뜻의 라틴어 'ballare'에서 유래되었고.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사랑곡'보다 '이별곡'이 조금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경험적으로도 사랑할 때보다 이별할 때 감성이 발라드 노랫말과 99.99% 들어맞는다.

마치 누가 내 마음을 훔쳐보고 가사로 옮겨 놓은 것처럼 말이다.

스무 살의 나를 달래주기도, 괴롭히기도 했던 명곡은 '일기예보'의 <행복하길 바랄게>였다.

오래도록 잊고 살았는데 며칠 전 문득 그 노래가 떠올랐다.


멀리 있는 너를 생각하면 지난 기억들이 또 찾아와
잊으려고 해도 그리 못하고 홀로 긴 밤을 눈물로 새우네
너도 가끔 내가 보고 싶은지 함께한 시간들 그리운지
지우려고 해도 그리 못하고 너의 향기를 찾아 헤매이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건지 너의 그 따스한 품에
나는 모든 걸 사랑했었는데 왜 우린 이렇게 됐는지
이젠 다시 느낄 수도 없겠지 너의 그 순결한 마음
하지만 너 어디에 있어도 행복하길 바랄게
나에게로 돌아와 줘 (내게 말할 수 있게) 꿈이었다고 생각해
(헤어진 시간들은)
느낄 수 있잖아 내 안에 숨 쉬는 너를 처음 보았던 그 설레는 느낌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건지 너의 그 따스한 품에
나는 모든 걸 사랑했었는데 왜 우린 이렇게 됐는지
이젠 다시 느낄 수도 없겠지 너의 그 순결한 마음
하지만 너 어디에 있어도 행복하길 바랄게


아빠 DNA를 물려받은 탓인지 첫째 아이도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발라드를 참 좋아라 한다.

아이의 플레이 리스트를 보면 요즘 곡보다 옛날 곡들이 훨씬 많다.

물론 최신 힙합 곡들도 상당수 포진되어 있지만, 주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유행했던 곡들이다.

이문세, 박효신, 여행스케치, SG워너비, 브라운 아이즈, 전인권, 이적, 윤도현 등등.

드라마 OST로 리메이크된 곡을 듣다가 마음에 든다고 원곡이 누구 것인지 물었다.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올드 펍'에 꽂히기도 했다.

그렇게 감성 충만한 아이의 낯설지 않은 발라드 플레이 리스트가 완성되었다.

MZ세대 음악 감성을 따라가고픈 아빠의 바람은 아이의 클래식한 감성 때문에 번번이 좌절된다.

그런 아이가 최근에 많이 듣는 곡은 '이문세' 형님의 <사랑은 늘 도망가>이다.

이 노래에 무슨 사연이라도 담겨 있는 걸까?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
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
붙잡지 못하고 가슴만 떨었지
내 아름답던 사람아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
내 잊지 못할 사람아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바람이 분다 옷깃을 세워도
차가운 이별의 눈물이 차올라
잊지 못해서 가슴에 사무친
내 소중했던 사람아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기다림도 애태움도 다 버려야 하는데
무얼 찾아 이 길을 서성일까
무얼 찾아 여기 있나
사랑아 왜 도망가
수줍은 아이처럼
행여 놓아버릴까 봐
꼭 움켜쥐지만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발라드를 좋아하는 감성은 아마도 우리 민족의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고려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시인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우연히 책에서 접했다.

5세 때 강 위에 뜬 해오라기(백로과 철새)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을(乙) 자를 강물에 썼는고"라는 시를 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로 그 천재 시인 말이다. 서경 출신으로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정적 김부식(개경 출신)에 의해 처형당했으나, 이후에도 여전히 그를 고려시대 대표 시인으로 꼽는 걸 보면 당시 그의 문장에 대한 평가가 어땠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정지상의 대표작 '송인'을 읽으면 옛사람의 이별의 통한이 가슴까지 전해지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백의 민족이자 발라드 민족이었나 보다.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비 개인 강둑에 풀빛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는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날 없구나.
대동강 물 언제나 마르랴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위에 뿌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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