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와 제주도 도로 위에서 배우는 미래
카마겟돈(Carmageddon)은 자동차(Car)와 성경에 나오는 인류 최후의 전쟁이자 대혼란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쳐 만든 신조어로 환경 규제 강화, 자동차 판매량 감소, IT 기업의 시장 진입 등으로 대혼란 국면에 처한 자동차 산업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2019년 1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자동차 업계에 카마겟돈 공포가 커지고 있다'라고 보도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자동차 산업 현장을 종종 카마겟돈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머리기사로 장식했다.
그러나 이보다 좀 더 앞선 2011년 후덥지근한 금요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주민들과 교통 당국자, 운전자들은 진짜 카마겟돈의 공포에 휩싸였다. 10차선에 걸쳐 하루 40만 대의 승용차와 화물차를 수용하며 교통지옥이라 불리는 '405번 도로'(우리나라로 치면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라고 해야 할까?)를 정비하는 사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시와 교통 당국은 고질적인 정체 구간에 새로운 차선을 붙여 미국 최악의 통근로를 개선하는 도전적인 모험을 강행했다. 주말 동안 도로를 폐쇄하고 공사를 벌이는 동안 50만 명에 이르는 주말 운전자는 다른 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이 공사를 카마겟돈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운전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도로가 없었다. 오죽하면 일론 머스크가 405번 도로의 대안을 고민하다 '하이퍼 루프' 개념을 생각해 낼 정도였다.
405번 도로를 차단하면 일대 모든 도로가 주차장이 되리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유례없는 교통대란이 예상되었다. 교통 당국자들은 변화를 이루려면 고통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근무 인원을 늘렸고 병원 역시 교통사고 급증에 대비해 응급실 근무 인원을 확충했다. 또한 경찰은 많은 트위터 팔로워를 거느린 연예인을 동원해 심판의 날을 경고했다.
우려했던 카오스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규모 정체나 교통사고, 응급환자가 급증하지 않았다. 차가 없으면 못 살 것이라고 믿던 LA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카풀을 활용했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필수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공사 기간 동안 405번 도로의 매연은 일반 수준의 10분의 1로 줄었고 언론들은 앞다퉈 카마겟돈을 '카마헤븐(Carmaheaven)'으로 바꿔 불렀다. 이 사건을 통해 교통 당국은 '자동차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더 많은 이동 수단에 초첨을 맞춘 교통 정책을 펼치기 위해 고민했다. 자동차의 나라 미국, 자동차로 성장한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이는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제주의 제법 규모 있는 관광지 주차장에는 '이것'이 있다. '탄소 없는 섬(Carbon Free Island)'으로 향한 제주의 여정을 상징하는 전기차 충전기 말이다. 현재 제주에는 약 2만여 대의 전기차 충전기가 관공서와 숙박시설, 관광지 심지어 식당 주차장에까지 설치돼있다. 제주도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자립을 위해 2030년까지 전체 등록 차량의 75%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전기차 보급에 앞장섰다. 파격적인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원, 가정용 충전기 설치비 지원 등 피부에 와닿는 적극적인 정책을 펼친 덕분에 2021년 11월 기준 2만 5천여 대의 전기차가 제주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는 전체 차량 대비 6.3%의 비중이며 전국 평균인 0.9%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탄소 없는 섬을 향한 항해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보조금이 계속 줄어들면서 전기차 보급도 탄력을 잃어갔다. 현재 제주도의 전기차 보조금은 1250만 원으로 보급 초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는 갈수록 줄어들 전망이다. 비싼 전기차 가격도 문제다. 전기차는 일반 차량에 비해 운영비와 세금은 훨씬 저렴하지만 차량 가격 자체는 비싼 편에 속해 서민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고급차가 되었다. 다른 문제도 있다. 인구 유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자동차 수도 덩달아 급격히 증가했다. 게다가 제주도는 자동차 없이 이동하기 어렵다는 지역 특성으로 가구당 차량 보유 대수도 전국적으로 가장 높다. 코로나도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제주를 향한 관광객의 발걸음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렌터카 공급 증가로 연결되었다. 탄소 없는 섬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한 걸까?
현재로서는 그래 보인다. 2012년 탄소 없는 섬에 대한 로드맵을 발표한 이래 제주도의 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환경부 온실가스 종합정보센터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는 2011년 대비 2019년 37%나 늘어났다). 전기차를 보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제주도의 지난 10년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다. 여기서 나는 로스앤젤레스의 카마겟돈이 떠올랐다. 도로를 더 건설하는 것보다 폐쇄하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했듯이 전기차는 훌륭한 대안이지만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자동차 중심의 사고'로는 탄소 없는 섬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없다. (제주도는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공급 과잉일 정도로 에너지 자립도가 높다. 전기차 충전을 위해 재생 에너지 사용 시 혜택을 제공하는 등 혁신적인 사업을 도입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인간은 편리함을 추구한다. 솔직히 작금의 지구 현실에서는 조금 불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보다 힘드리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란 사실은 이제 대부분 사람들도 잘 안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 환경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다. 정부가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 전기차 보급에 앞장서고 인프라 구축(전기차 충전기)에 많은 비용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카마겟돈과 제주의 도로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진짜 답을 찾으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저 가까이 다가가 줍기만 하면 된다. 시행착오만 반복하기에 지구 온도는 그리 선선하지만은 않다.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의 이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 이 글은 에드워드 홉스 <배송 추적>과 경향신문 2022년 1월 13일 기사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