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없는 아내를 위한 궁극의 떡볶이 레시피

옛날 사람이 만드는 옛날 떡볶이

by 조이홍

외식도 군것질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그 시절, 동네 분식집은 어린 남매에게 유일한 탈출구였다. 단돈 천 원이면 즉석 떡볶이 한 냄비에 만두며 야채튀김까지 골고루 먹었다. 요즘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과자 한 봉지, 아이스크림 한 개도 사기 힘들지만, 그때 천 원은 제법 큰돈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에 8백 원 할 때였으니 아직 국민학생이었던 우리 남매에게 천 원이 생기려면 얼마나 많은 심부름, 얼마나 많은 선행(善行)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동네 분식집이라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일은 없었다. 한 달에 한두 번 가기도 만만치 않았다. 명절이 왜 일 년에 두 번밖에 없고, 어린이날은 5월에만 있는지 원망스러웠다. 어느 해에는 추석에도 세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긴긴 겨울밤, 일찍 저녁밥을 챙겨 먹은 날이면 아직 잘 시간이 까마득하게 남았는데도 배가 출출했다. 그런 날에는 꼭 바깥에서 "메밀묵 사려, 찹쌀떡."하고 구슬픈 타령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끝내 참지 못하고 어머니 앞으로 쪼르륵 달려가 촉촉한 눈망울을 지닌 소년 만화 주인공으로 변했다. 막내아들 필살기 애교 한 스푼에 눈웃음 한 스푼을 장착했다. 박봉의 공무원 월급으로 한 달 생활비도 빠듯한 사정이라 어머니는 소년 만화 주인공을 애써 모른 척했다. 찹쌀떡을 사주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보채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그럼 나 떡볶이 만들어 먹을 게요." 차마 어머니는 그것까지 그만두라고 하지 못했다. "잘 밤인데…." 하시면서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라면 하나 제대로 끓이지 못했지만, 왠지 떡볶이만큼은 제법 잘 만들었다. 솔직히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동네 분식집에서 본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됐다.


떡볶이는 내게 무척 간단한 음식이었다. 별도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떡은 언제나 집에 있었다. 물론 진짜 떡볶이 떡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기계떡'이라 불렀고, 요즘은 '가래떡'이라 부르는 떡국 떡이었다. 어머니는 길고 흰 떡을 비스듬히 썰어 검은 봉지에 가득 담아 냉장고에 보관해 두셨다. 양은 냄비에 물을 반쯤 채우고 고추장과 설탕을 담뿍 넣으면 끝이었다. 떡을 미리 물에 불리는 건 사치였다. 그 당시 우리 집은 '곤로'를 사용했으나 나만의 떡볶이는 연탄불 위에서 탄생했다. 그게 더 운치 있고 맛도 좋았다.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국물이 끓기 시작하면 재빨리 찬장에서 당면을 꺼냈다. 역시 물에 불리지 않아야 제맛이다. 길고 거친 당면을 구부리고 또 구부리면 냄비 안으로 쏙 들어갔다. 어묵이나 파도 넣지 않고 오직 감으로만 만들었지만 떡볶이는 제법 맛이 훌륭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를 누나들과 나눠 먹으며 길고 긴 겨울밤을 보냈다. 가난은 조금 불편했지만 행복하지 못할 이유는 아니었다. 어설프게 만든 떡볶이 한 냄비로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코로나 백신 3차 접종 후 아내는 입맛을 잃었다며 통 먹지 못했다. 하루에 겨우 두 끼만 먹었다. (그러고 보니 항상 두 끼만 먹었는데….) 마음이 아렸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떡볶이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김밥도 어묵도 튀김도 순대도 좋아하는데…, 그럼 다 좋아하는 거 아닌가?) 도통 입맛 없어하는 아내를 위해 모처럼 실력 발휘할 기회였다. 춥고 길었던 겨울밤을 무탈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준 음식, 바로 '옛날 떡볶이'를 만들기로 했다. 떡과 당면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내는 그럼 무슨 맛이 있겠냐며 어묵과 양배추, 양파와 파까지 넣고 제대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아, 까다로운 고객님! 아빠는 라면과 김치볶음밥만 만들 줄 안다고 믿고 있던 아이들이 웬일이냐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라떼는 말이야'를 한바탕 읊어댔더니 아내가 "또 시작이다." 하며 혀를 끌끌 찼다. 화장실이 집안에 있고 아침, 저녁으로 '샤워'란 걸 하며, 그 옛날에도 '치즈'란 걸 먹었던 아내는 내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농담이라 여겼다. 아내는 정말 티 없이 맑은 사람이다.


나만의 옛날 떡볶이 만드는 방식은 무척 간단하다. 미리 육수도 만들지 않고 '계량' 따위도 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감(感)'이면 충분했다. 먼저 커다란 스테인리스 냄비에 물을 반쯤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고추장을 적당한 농도가 나올 때까지 풀어 넣는다. 이때 처음부터 많이 넣으면 실패할 수 있으니 작은 국자로 하나씩 넣으면서 농도를 맞춰야 한다. 적당한 농도란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마음에 드는 빛깔이 나오는 그 순간이 바로 적당한 농도이다. 농도를 맞추면 곧바로 설탕을 넣는다. 이번에도 계량하지 않는다. 우리네 어머니 손맛 비결이 계량은 아니지 않은가! 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는 텁텁한 맛이 날 수 있기에 적당한 양의 설탕을 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 나중에 넣을 어묵이나 양배추, 양파 등에서도 단맛이 우러나오기 때문에 너무 많이 넣게 되면 매운 떡볶이의 매력을 잃게 된다. 그 적당함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손끝은 기억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맛있을 만큼의 설탕량을 말이다. 떡볶이의 생명은 양념이다. 베이스가 완성되면 차례차례 준비된 재료를 넣으면 끝이다. 떡과 양배추를 먼저 넣고 어묵과 당면을 넣는다. 한참 끓였다 싶으면 양파와 파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한소끔 더 끓이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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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국이나 찌개를 끓일 때면 언제나 육수부터 냈다. 뒤포리와 멸치, 북어대가리와 말린 홍합, 파뿌리와 텃밭에서 직접 농사지은 무까지 육수에 들어가는 재료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성으로 만드는 아내 음식은 화학조미료 한 알갱이 들어가지 않아도 언제나 맛 좋았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음식을 만드는 아내가 육수도 내지 않고 계량도 하지 않은 마구잡이로 만든 떡볶이가 정말 맛있겠어하는 눈치로 식탁에 앉았다. 아이들 역시 반신반의(半信半疑)한 얼굴이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떡 하나, 어묵 하나만 먹어도 신세계를 경험하리라 확신했다. 도전적인 둘째 아이가 먼저 용기를 냈다. 쭈뼛쭈뼛하던 첫째 아이도 포크를 들었다. 뜨거운 떡을 호호 불어가며 입에 넣었다.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내도 "괜찮네, 먹을만하네." 했다. '떡믈리에(떡볶이 소믈리에)' 자격증이 있는 아내가 인정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한 냄비 가득 만들어서 이걸 어떻게 다 먹나 했는데 바닥이 드러나는 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당최 맛있는 음식이 없다며 끼니를 거르던(?) 아내도 입과 손이 무척이나 바빴다. 마무리로 식은 밥 한 공기와 김, 참기름을 넣고 볶았다. 입맛 없는 아내도 끝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밥까지 비벼? 누가 먹는다고!" 투덜대던 아내였다.


떡볶이의 역사나 정체성 같은 건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 긴긴 겨울밤에 위로가 되었던 음식도, 입맛 없는 아내가 모처럼 맛있게 먹은 음식도 떡볶이였으니 그거면 충분했다. 아빠가 잘 만드는 음식 목록에 떡볶이를 올려도 좋다고 아이들도 인정해 주었으니 출출할 때 뚝딱 만들어서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 더 늘었다. 소울 푸드가 별건가, 이런 게 바로 소울 푸드지. 그 옛날 가난이 우리 행복을 가로막지 못했던 것처럼 코로나도 우리 행복을 막을 수 없다. 도란도란 앉아서 사이좋게 나눠 먹을 수 있는 떡볶이 한 냄비만 있어도 충분히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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