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우리 아이 독서 어떻게 할까?
아이들에게 '겨울방학 독서목록'을 만들어 주고 두 주가 지났다.
오늘 아이들에게 '이번 주말에 중간 점검할 거야!'라고 낮고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더니 아빠 눈치를 살폈다.
'독서의 중요성'을 이미 수차례 강조했으니 오늘 또 반복하면 잔소리로 들릴 게 분명했다.
잠시 망설였다.
아이들을 위해 나쁜 경찰이 되기로 했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독서목록 이외에도 가끔 도서관에 들러 아이들이 볼만한 그림책이나 청소년 소설을 빌려 오곤 한다.
아내는 주로 재미있을 법한 그림책을, 아빠는 주로 도움 될만한 책을 골랐다.
지난 주말에도 둘째 아이를 위해 두 권의 책을 빌려다 주었다.
<열여섯 그레타 기후 위기에 맞서다>와 <싸움의 달인>이었다.
<열여섯 그레타 기후 위기에 맞서다>는 페이지 수는 많지 않지만 그레타 툰베리의 여정(Fridays for Future)을 짧고 임팩트 있게 소개한 책이었다. 그녀가 다보스 포럼이나 UN, 프랑스 의회 등에서 연설한 내용도 무척 감명 깊었다. 환경, 기후 위기 관련 용어 해설도 있고, 아이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열 가지 수칙도 있었다. 재미와 의미 두 가지를 모두 가진 책, 둘째 아이가 읽으면 그만이겠다 싶었다.
<싸움의 달인>은 초등학교 5학년 소령이가 겪는 싸움의 세계를 그린 성장 소설이다. 친구와의 싸움, 재개발 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싸움을 절묘하게 담았다. 김남중 작가의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나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어 얼른 집었다. 사실 도서관에서 인기 있는 책이라 빌리기 어려웠는데 마침 운 좋게도 눈에 띄었다. 180여 쪽이면 많지도 적지도 않아 이 책 역시 둘째 아이에게 딱이다 싶었다.
보통 둘째 아이에게 요구하는 하루 독서 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만화책도 많이 읽고 잡지(고래가 그랬어, 위즈키즈, 과학소년)도 많이 읽으니 한 시간만 독서 시간을 확보해도 충분하다 싶었다. 그런데 <싸움의 달인>을 손에 쥔 아이는 밤 12시가 넘도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두 시간을 훌쩍 넘어 온통 책 읽기에 집중했다. 보통 그 정도의 집중력이면 게임할 때나 정말 좋아하는 만화책을 읽을 때나 가능한 수준이었다. 늦었으니 그만 자러 들어가라고 아이에게 말했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아빠, 내가 좋아하는 이런 책으로 빌려다 줘. 저런 책(그레타) 말고."였다. 아이의 뾰족한 그 말이 심장을 후벼 팠다. 아내도 그런 둘째 아이를 보더니 아빠의 독서목록에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해야 하는 일도 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혼란스러웠다. 아이들 독서목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책과 가까이했다. 요즘은 적극적인 독서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책과 가까운 편이라고 믿었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라면 분명히 다른 책들, 재미 위주의 책으로 구성했을 터였다. 첫째 아이는 다분히 교육적인 목적을 고려해 책을 골랐지만, 둘째 아이는 재미와 아이의 관심사를 고려한 구성이었다. 방학이 3분의 1일 지나간 시점에서 이제 겨우 한 권 읽었다는 건 문제가 있었다. 다그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독서 전문가들이 아이들에게 독서를 공부나 교육의 목적으로 읽지 않도록 조언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저 재미있게 읽게 하라고. 나도 반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렇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 결과가 작금의 독서 현실이 아닐까? 최재천 교수님도 독서를 취미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공부여야 하고 치열한 고민이어야 한다고. 이 말에도 반만 동의한다. 짜장면이 맛있다고 계속 짜장면만 먹으면 언젠가 짜장면을 먹고 싶지 않은 날이 온다. 그래서 가끔 짬뽕도 먹고 볶음밥도 먹고 잡채밥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짜장면을 계속, 오래도록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독서도 이와 같지 않을까?
"읽고 싶은 책을 읽으려면, 읽어야 하는 책도 읽어야 한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