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아니라 우리가 걱정됩니다.

1월 22일, 기후 위기를 생각하며

by 조이홍

처음 기후를 걱정하기 시작했을 때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기후 변화'라고 불렀다.

아직은 기후가 변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 정도였고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최근에는 '기후 위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변화(變化,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달라짐)'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이고 때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므로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위기(危機, 어떤 일이 그 진행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악화된 상황, 또는 파국을 맞을 만큼 위험한 고비)'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확했다.

아울러 과학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획기적인 방법으로 지구 및 기후 관련 각종 데이터를 축적해 변화가 인간의 책임이라고 명확하게 규명했다. (IPCC 6차 보고서, 1차 실무 리포트)

기후가 1.5℃, 2℃, 3℃ 올라갈 때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도 시뮬레이션했다.


조금 더 과격한 사람들은 작금의 상황을 직시해 '기후 재앙'이나 '기후 재난'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재앙(災殃,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이나 '재난(災難, 뜻하지 않게 생긴 불행한 변고)'이라는 단어는 그 쓰임에서 오는 뉘앙스 때문에 나조차도 자주 사용했으나 '뜻하지 않게' 생긴 이유 때문이 아니라 분명한 원인(인간 활동)이 확인되었으므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인간의 활동이 곧 기후 위기를 초래한다는 문장은 매우 명료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매우 복잡하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해서 그냥 손을 놓을 수밖에 없을 정도다.


사람들은 왜 기후 위기에 둔감할까?

현제 상황이 매우 위태로우며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미래가 예견되는지 불 보듯 뻔했다.

그레타 툰베리의 'Fridays for Future'는 수백만 청소년의 호응을 이끌어 냈지만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들은 바뀌지 않았다.

왜? 그들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권자(시민)들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각자가 처한 상황, 즉 나이나 성별,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다를 터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냉정하게 말해 현세대는 미래 세대가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위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기후 위기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사람들은 '지구'를 걱정한다.

지구가 너무 더워졌다고, 지구가 숨을 쉴 수 없다고, 지구가 황폐해진다고.

인간의 시간 단위로는 거의 영겁(영원한 시간)에 가까운 지구의 역사에서 기후 변화가 극적으로 변한 시기가 몇 차례 있었다. 지표면이 전부 얼음인 시절이 있었고, 남극과 북극에 얼음이 없는 따뜻한 시절도 있었다. 오존층이 형성되기 전에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유해한 광선을 온몸으로 받아내기도 했다.

방사능이 지구를 덮었던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지구는 살아남았다. 온전한 지구 그대로.

사라진 건 당시 지구의 땅 위를, 혹은 바닷속을 헤엄치던 생명체였다.

기후 위기로 걱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 지구가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해수면이 상승해 살 곳을 잃는 것도 인간이고, 평균 온도가 2~3℃ 상승해 홍수, 가뭄, 해일, 태풍, 산불 등이 발생해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는 것도 우리 인간이다.

나는 다른 생명체가 아닌 우리가 걱정된다.

이건 우리 이야기고, 우리가 풀어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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