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조정래 작가 <홀로 쓰고, 함께 살다>를 읽고
<젊은 ADHD의 슬픔>이라는 작품으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받은 정지음 작가의 신간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가제본으로 받았다.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서평 이벤트에 응모했는데 운 좋게도 덜컥 당첨이 되었다. 정지음 작가의 문장은 무척 뾰족했다.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수식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뾰족함 속에서 작가는 웃고 울고 숨 쉬고 또 때론 토한다. 뾰족한 문장은 어찌나 재기 발랄하고 때론 신랄한지 읽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게 만들었다. 과잉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절제로 회귀했고, 이래도 되나 싶어 눈살을 찌푸리다가도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정지음 작가의 문장은 펄떡이는 한 마리 고등어 같았다. 살아 숨 쉬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코끝이 찡한 비릿함이 동시에 전해졌다.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로 문장의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작가의 재능이 무척 부러웠다.
책을 읽을 때면 마음에 드는 문장, 좋은 문장을 필사해 두곤 한다. 그리고 글을 쓰다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으면 필사 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살펴본다. 쓰고 싶은 문장, 써야 하는 문장의 실마리를 얻고 싶어서다. 물론 텍스트를 그대로 모방하진 않는다. 좋은 문장은 천 피스짜리 퍼즐의 한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그 퍼즐 안에서 읽을 때 참된 맛이 난다. 좋다고 그대로 베껴 썼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레이먼드 챈들러처럼 나 역시 해체하고 재구성하기를 수십 번 반복한다. 그럼 백 번 중에 한두 번은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온다. 글쓰기에도 타고난 재능이 필요할 터인데 턱없이 부족한지라 그 빈자리를 노력으로 채우는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두 번이 세 번, 열 번 그리고 오십 번으로 늘어나면 좋겠다.
조정래 작가님의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문답집 <홀로 쓰고, 함께 살다>에 '작가로서의 재능 판별법'이 나온다. 자기가 예술적 혹은 문학적으로 재능이 있는지를 스스로 판별해야 하는 일은 극도의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데 이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조정래 작가님은 대놓고 말한다. 하지만 책을 구입한(질문한) 독자를 위해서 그 요령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작가님들도 연필을 들고 몇 개나 해당하는지 체크해 보시길 바란다.
첫째,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배고픔처럼, 목마름처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동해야 한다.
둘째, 어떤 계기로 글을 쓰든 남다른 생각과 특이한 발상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 재능의 핵심인 개성과 창의력이다.
셋째, 같은 소재나 주제로 여러 번 글을 쓰더라도 각기 색다르고 특출하게 써낼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표현, 다른 문장, 다른 논리, 다른 전개로 각기 다른 글을 써낼 수 있다면 작가가 될 60퍼센트의 재능을 갖춘 셈이다.
넷째, 일기를 날마다 대학노트 한 장(2페이지)씩 써나갈 수 있어야 한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길게 써 나가야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400페이지가량 소설을 다 읽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400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쓴 작가를 생각하면 읽기만 한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섯째, 이른바 명작 소설을 읽고 난 후, 감동만 하지 말고 그런 방법 말고 다르게 쓸 수 있는 방법, 새로 쓸 수 있는 방법이 하나라도 생각난다면 작가가 될 수 있는 100퍼센트 재능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다섯 가지 재능 중에 여러분은 몇 개나 가지고 있는가? 내 경우 느슨하게 생각하면 세 개, 냉정하게 평가하면 한 개도 어렵다. 특히 다섯째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경지일 터였다. 하지만 다섯 가지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모든 원석이 보석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조정래 작가님은 재능에 두 가지를 더해야 진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개는 무엇일까? 하나는 '노력'이다. 조정래 작가님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노력입니다."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할 만큼 작가에게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문인들끼리 모이는 술자리에도 나가지 않고 방송에도 나가지 않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20년 세월을 서재라는 글감옥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더니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 차례로 태어났다. '혼자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의 길이와 좋은 작품의 수는 비례한다.' 50년 동안 꾸준히 글쓰기를 해온 조정래 작가님이 얻은 결론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독거(獨居)'다. 모든 창작은 오로지 혼자 작업하는 것이고, 혼자 있음을 예술혼이 불붙어 오르는 절정의 시간으로 가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거를 즐기고 독거 속에서 창작의 황홀경에 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작가, 오래도록 기억될 생명력을 지닌 작품을 쓸 수 있게 된다. 예전에는 책 싸들고 첩첩산중에 있는 절로 고시 공부를 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아무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글만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과연 내가 그 외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 본다. 오싹하고 소름이 돋는다.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길은 참으로 멀고 험하다.
재능+노력+독거, 이것이 조정래 작가님이 말한 좋은 작가가 되는 세 가지 요건이다. 이제 나도, 이 글을 읽는 글쓰기에 관심 많은 독자들도 '작가'라는 보물섬에 닿는 지도를 손에 쥐었다. 지도를 펼쳐 보물이 있는 목적지로 모험을 떠날 것인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물론 다른 지도를 더 찾아봐도 좋고, 아예 자기만의 지도를 만들어도 상관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각자의 길에 '글쓰기'가 함께 하기를. 결국 작가는 쓰는 사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