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다가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한 왕국이 있었다. 그 왕국의 왕은 어질고 지혜로워 덕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누구나 일한 만큼 소유할 수 있었고, 우리마다 가축이 넘쳐났다. 모든 백성이 오늘을 즐기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니 왕을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태평성대였다. 그러나 웃고 떠들며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꼴도 보기 싫은 괴팍한 마법사가 하나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백성들이 행복한 게 싫었다. 마법사는 왕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백성 모두가 물을 길어 먹는 우물에 신묘한 약을 풀었다. 그 물을 마신 사람은 누구든 미쳐버리는 힘을 가진 약이었다.
우물을 마신 백성들은 차례차례 미쳐갔다. 한 달쯤 지나자 왕과 왕비를 비롯한 몇몇 왕족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미쳤다. 왕과 그 가족이 마시는 물은 따로 있어서 마법사도 감히 그 우물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백성의 건강을 걱정하던 왕은 안전과 공중위생에 관한 칙령을 내려 백성을 돕고자 했다. 하지만 나랏일을 수행하던 관리들도 우물을 마시고 미쳐버린 상태였다. 그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왕의 명령을 말도 안 되는 미친 소리라고 여겨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는 오히려 왕이 미쳐 이상한 짓을 한다고 온 나라에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을 들은 (이미 미쳐 날뛰고 있던) 백성들은 왕궁으로 몰려가 미친 왕이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그 모습을 본 왕은 절망에 빠졌다. 이제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왕위를 내려놓으려는 왕에게 왕비가 말했다. "우리도 우물에 가서 그 물을 마셔요. 그러면 우리도 백성들과 똑같아질 거예요." 결국 왕과 왕비도 신묘한 약이 든 우물을 마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 나간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왕국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과연 이 나라는 이전과 똑같은 나라일까? 그전처럼 모두가 행복한 나라일까?
이 이야기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서 자살 시도를 하고 깨어나 정신병원에 갇힌 신세가 된 베로니카에게 완쾌된 제드카가 들려준 이야기를 아주 조금 현실에 맞춰 윤색한 것이다. 베로니카는 미쳤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제드카에게 미친 게 무엇인지 묻자 그녀가 대답 대신 들려준 것이 바로 이 이야기다. 이야기를 계속 곱씹어 보면 정상과 비정상, 미친 것과 미치지 않은 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 두께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두 개인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는 한 개 눈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이고, 눈이 한 개인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는 두 개 눈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일 터였다.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같은 우물을 마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가 그 차이를 결정했다.
신묘한 약을 탄 우물의 이야기가 꼭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면 같은 우물을 마신 사람들이 부쩍 많이 눈에 띈다. 10년 전쯤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소수는 행복했고, 다수는 불행했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졌고, 갖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잃어버렸다. 일군의 사람들은 그때가 몹시도 그리웠나 보다. 너무도 그리워 알면서도 신묘한 약을 탄 우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요즘 나는 문득문득 이런 고민에 빠진다. 나도 그냥 우물을 마셔버려야 하는 건가? 솔직히 나는 조금 두렵다. 국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꽃 같은 청춘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보내지 말았어야 할 찬란한 생명들이었다. 우리 시계가 10년 전을 향할까 봐, 우리 사회가 그때로 돌아갈까 봐 아주 조금 무섭다. 우물을 마시면 그 두려움이 사라질 터였다.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