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의 사회학

1월 29일, 죄책감 없이 욕하는 방법

by 조이홍

적당히 착하고 순진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욕 한마디 못하는 순둥이였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욕의 세계'에 발을 디딘 건 중학교 때부터였다. 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학교 때 욕을 전혀 몰랐다고 발뺌하려는 건 아니다. 욕을 배웠고(욕이 득음처럼 가슴에서 저절로 나왔을 리 없으니) 가끔 사용하기도 했지만 '참맛'은 알지 못했다. 그때는 아직 '도대체 저렇게 쌍스러운 말을 왜 하는 거야?' 싶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달라졌다. 욕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찰진 욕이 입에서 발화되는 순간, 가슴 한구석에서는 100 연발 불꽃놀이가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그래, 이 맛이야!" 카타르시스였다. 대상과 상황에 맞는 욕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고 까까머리 중학생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한번 욕의 맛에 빠지자 그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욕이라는 신세계에 입문하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여전히 나를 순둥순둥 어린아이로 알았던 부모님이나 누나들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욕이 튀어나올까 봐 마음을 졸였다. 친구들과 있으면 '새끼'라는 단어가 없으면 대화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였으니 언제라도 불쑥 그 단어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에서는 되도록 된소리로 된 단어를 발음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가급적 말도 줄였다. 수다쟁이 막내아들이 말수가 줄어 어느새 과묵한 아이로 변했다. 아마 부모님은 '사춘기가 와서 그러나?' 싶었겠으나 사실 사춘기는 비껴갔다. 가족들 앞에서 말실수할까 봐 그랬던 거였다. 사회 통념상 욕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였다.


고등학생이 되자 욕의 매력은 시들해졌다. 욕할 시간도 없이 공부하느라 바빴다. 게다가 욕이라고 해봤자 '낳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동물(새끼)' 앞에 숫자를 붙이는 게 전부였으니 그렇고 그런 레퍼토리에 지치기도 했다. 제법 철이 들었는지 욕하는 아이들이 저질로 보이기도 했다. 난 그러지 말아야지 싶었다. 물론 여전히 '새끼'라는 말을 사용하곤 했지만, 친구들끼리 있을 때 이 말은 더 이상 욕이 아니었다. 친근함의 표시였다. 분노나 저주를 담지도 않았고 통쾌함도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오자 욕할 기회가 더는 없었다. 그렇게 욕은 내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자 잊어버린 줄 알았던 욕들이 꿈틀꿈틀 되살아났다. 누구 보는 사람도 없으니 찰진 욕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이미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운전자들이 모두 순식간에 어린 동물이 되었다. 하루는 친한 친구가 내 차에 탔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어린 동물이 여러 마리 소환되었다. 그때 친구가 욕하지 않는 방법을 하나 소개해 주었다. 자신도 가끔 써먹는데 효과가 그만이라고 했다. 친구가 소개해 준 방법은 이랬다. 어린 동물이 소환될 타이밍에 '세모'나 '네모', '동그라미'라고 외치라는 것이었다. 다만 발화는 그 단어로 하되 감정(분노와 저주)은 어린 동물에 실린 그대로를 발산하라고. 그럼 욕과 똑같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후에 친구가 가르쳐준 방법을 써먹었는데 정말 효과가 좋았다. 욕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부터 비상등을 켜지 않고 끼어들거나 얌체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세모나 네모가 되었고,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동그라미가 되었다. 수많은 세모, 네모, 그리고 동그라미가 도로 위를 부유했지만 화내거나 상처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전에 '욕'의 정의를 찾아보니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라고 나와 있다. 이 세상에 모두 천사 같은 사람만 사는 것 아니므로 가끔 기꺼이 욕 한바탕 들어야 하는 나쁜 사람들이 나타난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가 사는 지구별의 현주소다. 분노와 저주를 담아 시원하게 욕을 내뱉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다가도 뒤끝이 개운치 않다. 왠지 나도 욕 들어 마땅한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는 더러운 기분이 든다. 그럴 때는 자기만의 욕을 창조해 보자. 새로운 단어를 조합해도 되고 꽃 이름을 외쳐도 좋다. 누군가는 장미는 장미라 불리지 않아도 장미라고 했지만 정말 욕이 필요한 상황에 분노와 저주를 담아 '장미꽃'이라고 외쳐보자. 카타르시스는 느껴지지만 죄책감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4차 산업 혁명시대인데 이제 욕도 진화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 어린 동물만 소환할 것인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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