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詩

2월 1일, 송경동 시인 <비대면의 세계>

by 조이홍

화성에 온 것 같아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수만 번의 번개가 치며

한 달째 100여 곳으로 번진 산불이

대한민국 서울 면적의 20배를 태우고도

꺼지지 않고 있는데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전 세계 산소의 20퍼센트를 생산해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는

2019년 7만 건의 불이 2020년 8월까지 10만 건의

산불로 이어지며 일 년째 타오르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2020년 2월 초 남극 마람비오 기지는 때아닌 여름으로

인류가 남극에 발을 디딘 후 역사상 최고 기온이 관측되고

세계에서 가장 춥던 북극의 베르호얀스크에선

38도의 무더위가 찾아오고,

기후변화의 카나리아라는 그린란드의 대륙빙하가

한반도 2배 땅을 1.25미터 높이로 잠글 양인

532조 리터까지 역대 최고 속도로 녹고 있는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이라 하고


안데스 히말라야 등 고원에서

수억 년 태양열을 반사하며 지구의 거울로 지표를 식히던 빙벽들이

녹아 생긴 빙하호가 지난 십 년 새 1.5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또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우기도 아닌 한반도에 세 번의 태풍이 연달아 오고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에볼라……

코로나19가 창궐한 까닭도

기후위기 기후재난 기후변화 때문이라는데


너무들 한다

아마존 우림이 파괴되는 것이

다국적 식량 자본과 소고기 문명을 위한 목축 자본

그리고 광산업을 위해 무차별 개발을 밀어붙이는

브라질의 신종 독재자 보우소나루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너무들 한다

기후위기 기후재난의 원인이

전 세계 석유자본 산업자본의 무한 탐욕 때문이라는 것은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부추기는 시장 때문이라는 것은

자동차 문명 플라스틱 문명 때문이라는 것은, 그 눈먼

개발과 발전의 신화 때문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교육도 언론도 문화도 정치도 너무하다


이 모든 종말과 파멸의 주범은

산불도 폭염도 미세먼지도 오존층도 아닌

태풍과 토네이도와 멸종해가는 종다양성도 녹아가는 빙하도 아닌

박쥐도 천산갑도 멧돼지도 고양이도 아닌

사스도 메르스도 에볼라도 코로나19도 아닌


진실과 오랫동안 비대면해온

인간 그 스스로이다

우리가 끝내 우리의 유한한 삶과

무한한 세계에 대한 무한한 무지에 대해

인정하고 한없이 소박해지지 않는 한

소수의 무한 탐욕이 절제되지 않는 한

도미노처럼 쓰러져가는

세계의 재난은 끊이지 않을 것이며

파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새해 계획으로 금연도 좋고, 다이어트도 좋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거나 읽고 싶은 도서 목록을 만들어 독서 삼매경에 흠뻑 빠져도 좋지만, 지구를 위해서(사실은 우리를 위해서) 새해 계획란을 한두 줄 정도는 비워두어도 좋겠다. 그리고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자. 육식 줄이기나 비닐봉지 없는 날, 플라스틱 쓰레기 만들지 않는 날 등을 계획해 보아도 좋겠다. 오랫동안 진실과 비대면해온 인간이 이제 진실과 마주할 차례다. 우리가 불편해야 지구가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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