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책 읽기 꺼려하는 아이를 위한 Tip
옛날 아주 먼 옛날, 한 부자가 죽기 전에 아들 셋에게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너른 포도밭 어딘가에 감추어 두었다고. 천성이 게을렀던 자식들은 평소 삽이나 곡괭이 같은 농기구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더랬다. 그런 아들들이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을 리 만무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유언을 들은 아들 셋은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찾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포도밭을 파헤쳤다. 하지만 끝내 포도밭 어디에서도 은전 한 닢 나오지 않았다. 이들이 열심히 포도밭을 갈아엎은 덕분에 그해 포도 농사는 대풍년을 맞았다. 그제야 아들들은 깨달았다. 아버지가 남긴 진짜 유산이 무엇인지!
책 읽기 꺼려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책을 읽게 할까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을 줄 안다. 나도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그러다 이번 설 연휴에 괜찮은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다. 아이들 독서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부모들이 한 번은 시도해볼 만한 아이디어라 함께 나눠보려고 한다.
설 연휴를 맞아 아이들 공부방을 대청소했다. 주요 타깃은 그림책 책장이었다. 마구잡이로 꽂은 그림책들이 보기 싫어 정리하면서 아이들이 더는 읽지 않는 초등 저학년 그림책 300여 권을 따로 추렸다. 부모님께 세배드리러 고향집을 찾는 김에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이 되는 큰 조카의 딸들(외손녀 뻘)에게 그 책을 전해주기로 했다. 두어 해 전에 이미 500권을 보냈는데 벌써 다 읽고 새로운 책에 대한 갈망이 절정에 달한 아이들이었다.
몇 시간 동안 책장을 정리하고 추린 책을 열심히 포장하는데 둘째 아이가 뜬금없이 "맞아, 이 책들 중에 내가 숨긴 용돈이 있어!" 하며 벌레 씹은 표정으로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둘째 아이는 그간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일이나 어린이날, 명절 때 받은 용돈 일부를 모아 비상금으로 챙겨두었더랬다. 그 비상금을 자기만 아는 어딘가에 감추어 두었는데 그곳 중 한 곳이 바로 책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아이가 책 제목을 까먹었다는 것! 이미 한 시간 가량 책을 포장한 후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나와 첫째 아이는 어차피 기억도 못하는 비상금 잃어버린 셈 치라고 타일렀다. 아이도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아내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래서 엄마한테 맡기라고 했잖아!" 일침을 날리며 세상 고소한 표정을 지었다. 아, 환상의 콤비 플레이!
큰 조카 집으로 책을 옮겨 주면서 둘째 아이 비상금에 대해 정말 별생각 없이, 해프닝쯤으로 여기고, 전해주었다. 그 일정을 끝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운전하는 사이 큰 조카에게서 제법 많은 카톡이 와 있었다. 아이들이 책 읽는 사진 몇 장과 함께. 알고 보니 큰 조카 역시 딸들한테 둘째 아이의 사라진 비상금에 대해 말해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이 몇 시간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앉아서 책만 읽었다고 했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알고 보니 좋아하는 책도 읽고 사라진 비상금도 찾으면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큰 조카도 그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 나에게 카톡으로 알려왔던 것이다.
비단 현금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책 사이에 숨겨 두고 그걸 찾아보라고 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쥐게 될 터였다. 일종의 '보물찾기'인 셈이다. 아이들이 보물만 찾고 책을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의구심은 당연하다. 경험상 아이들이 책을 가지고 놀고 책과 가까워지면 끝내는 책 읽기에 이르렀다. 우리 아이들만 하더라도 책으로 집을 짓고, 도로를 만들고, 탑 쌓기를 하며 놀았다. 설령 당장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책을 손에 쥐게 되는 경험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책이란 보물찾기(재미)'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면 언젠가는 책을 즐겁게 읽는 아이가 되리라 확신한다. 그래도 안 읽으면? 또 다른 궁리를 해보는 수밖에.
(이미지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