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추석이나 설 명절이 다가오면 작은 어머니들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차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글지글 맛난 전들을 몇 광주리나 만들었다. 아침 일찍 시작한 일은 오후 늦게 겨우 끝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잔심부름을 하고 김을 재웠다. 왠지 어머니는 김 재우는 일만큼은 꼭 아들한테 시켰다. 학교를 졸업한 누나들은 돈 벌러 갔고, 학교를 다니던 누나들은 어머니가 다른 곳으로 피신시켰다. 작은 어머니들도 딸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어머니'들만 모여 명절 음식을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제사는 우리 집 조상들께 올리는 예(禮)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머니들만 분주했다. 아버지와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안방에서 바둑을 두었다. 방금 만든 따끈한 전에 소주도 한잔씩 했다. 어린 내게 그 모습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2. 명절 풍경 둘
명절 당일 아침 일찍 차례를 지냈다. 그 시절에는 평소에는 먹을 기회가 없는, 명절이 돼야만 먹을 수 있는 맛 좋은 음식들이 많았다. 차례상을 물리면 모두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아침 밥상에 어머니들 자리는 없었다. 워낙 대가족이기도 했지만 '남자 자식'들은 그 상에서 밥을 먹고 오히려 아침을 준비한 어머니들은 부엌에서 식사를 했다. 그 상황은 어린 내게도 정말 이상해 보였다. 굉장히 불합리해 보였다.
3. 명절 풍경 셋
폭풍 같은 식사 시간이 끝나면 아버지들은 '커피'를 타오라고 하며 담배를 한 대씩 입에 물었다. 그때만 해도 집안에서 담배를 피웠다. 거짓말 조금 보태 설거지거리가 부엌에 산더미만큼 쌓여도 아버지들 중 누구 하나 빈말이라도 설거지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설거지는커녕 빈 그릇 하나 나르지 않았다. 뭐 빈 그릇 나르기는 아이들 몫이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설거지가 산더미인 마당에 커피 타오라고 하는 건 좀 지나치다 싶었다.
4. 명절 풍경 넷
설거지를 끝내면 아버지 형제들은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그럼 엄마도 좀 쉬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할아버지 형제의 가족들이(육촌쯤 될 듯) 딱 점심시간에 맞춰 우리 집에 들렀다. 작은 어머니들도 집으로 돌아가신 상황이니 또 한 번 대가족을 위한 상차림은 오롯이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싫은 기색 한번 안 하시고 있는 반찬, 없는 반찬을 다 내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진수성찬을 차렸다. 식사가 끝나면 그들은 떠났고 설거지는 또 그대로 어머니 몫이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수십 년을 사셨다.
어머니 자리는 이제 아내가 대물림했다. 이제 아내가 차례 음식을 만든다. 덜 여문 손이지만 아내도 제법 그럴싸하게 만든다. 전 부치는 일은 나도 함께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아이들을 돌보고 아내가 전을 부쳤다. 예전처럼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반나절 동안 구부리고 앉아 전을 부치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버지는 밤을 까거나 뒷정리를 책임진다. 평생 하지 않던 걸레질도 하신다.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면 이제는 모두 함께 앉아 밥을 먹는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들도 며느리도 모두 함께. 당연한 일이 당연해지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래도 설거지는 아직 며느리나 딸들의 몫이다. 내가 몇 번 나섰지만 정작 설거지를 한 건 한두 번이 고작이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 커피 타는 건 내 몫이다. 이번 설에는 내가 설거지를 했다. 예전 같으면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남자가 설거지를 해?" 하셨을 어머니나 누나들이 "그래 네가 해!" 하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설거지를 했다. 옛날에 비하면 달라진 명절 풍경이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누구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요구된다면 '명절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명절 한번 지내면 부부 싸움이 증가하고 이혼율이 증가한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안다. 명절의 사전적 의미는 '전통적으로 그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이다. 현실을 감안하면 이 정의는 사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그 사회의 남자들이 해마다 즐기고 기념하는 날'로 말이다. 아직 명절을 즐기는 여성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역사는 약한 자, 갖지 못한 자에게 힘을 보태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그런데 유독 세상의 반인 여성을 위해서는 인색하다. 돌이켜보면 명절이란 며느리(어머니)의 피땀눈물로 완성된 파라다이스였다. 사랑하는 이들의 피땀눈물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남자가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여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준비하는 과정이 모두에게 공평하도록, 즐거우면 다 같이 즐겁고 힘들면 다 같이 힘들어야 한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진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