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음식에도 서사가 있다
아내는 과메기를 먹지 않는다. 입에도 대지 못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아내도 나만큼 과메기를 무척 좋아했다. 해풍에 잘 말린 과메기는 비리지 않아 겨울철 별미로 우리 부부가 즐겨 찾던 음식이었다. 살 오른 과메기 한 점을 김 위에 올리고 그 위에 파와 배추를 올린 후 돌돌 말아 초장에 찍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포항이 고향인 지인이 끝내주는 과메기 한 상자를 보내주었다. 딱 봐도 정말 최상급 과메기였다. 우리는 앉은자리에서 과메기 한 상자를 거덜 냈고 그 바람에 아내는 덜컥 탈이 나고 말았다. 한때는 푸른 바다를 힘차게 헤엄쳤을 꽁치들이 아내 입을 통해 다시 세상 밖으로 소환되었다. 그날의 트라우마 때문에 아내는 더 이상 과메기를 먹지 않는다. 아내가 먹지 못하니 나도 덩달아 먹지 못했다. 삶에 큰 즐거움 하나를 잃었다.
우리 아이들은 비교적 가리는 음식이 없다. 나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나물류 반찬도 잘 먹고 젓갈류도 무척 좋아했다. 내가 오징어젓을 20대에, 명란젓을 30대에 먹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아이들 입맛의 스펙트럼은 무척이나 넓은 편에 속했다. 특히 둘째 아이는 천성적으로 오이를 먹지 못하는 걸 제외하면 정말 가리는 음식이 없다. 그런 아이들과 처음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항상 입맛 없는 아내가 하도 해장국, 해장국 하길래 이름 난 해장국집에 찾아갔다. 그 집에는 메뉴가 선지 해장국 하나밖에 없어 모두 선짓국을 주문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해장국이 나오고 아이들은 처음 보는 선지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아내는 '고기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한 입씩 선지를 맛본 아이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모두 아빠 그릇에 선지를 옮겨 담았다. 아내도 너무 많다며 반을 내게 덜었다. 아무리 선지를 좋아한다지만 3인분도 넘는 선지를 혼자 다 먹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날 이후 다시는 선짓국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직 선지가 죽은 소에서 받아낸 응혈 상태의 피라는 걸 모른다. 그래도 삶에 큰 즐거움 하나를 잃었다.
배우 공유와 나는 비슷하게 생겼다는 공통점 말고도 다른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도깨비 공유는 신에게 몇 백 년 동안 죽지 못하는 벌,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혹독한 벌을 받았다. 그리고 오직 도깨비 신부만이 그 저주를 풀고 無로 돌아가리라는 계시를 받았다. 나는 아내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중 하나인 치킨이 맛없게 느껴지는 가혹한 벌을 받았다. '아내가 집에서 직접 튀겨 준 기름진 치킨' 덕분에 무려 두 달간 치킨을 끊었다. 불금이면 으레 생각나는 치맥도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가 에어 프라이기로 만들어준 짭조름한 버펄로 윙 덕분에 다시 치킨을 먹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에 먹던 치킨 맛을 숫자 100이라고 한다면 다시 먹는 치킨 맛은 6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맛있던 치킨 무도 예전 같지 않다. 삶에 큰 즐거움 하나를 잃었다.
코로나로 외식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아내의 요리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그런 아내도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음식이 있으니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감자탕이다. 내 기억에 감자탕과 순댓국은 모두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먹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비위가 약한 편에 속해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잘 먹지 못했다. 뭐, 지금이야 그 맛있는 걸 왜 안 먹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정말 도전하기에 쉽지 않은 음식이었다. 가리는 음식이 없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감자탕도 무척 좋아했다. 항상 감자탕집에 가면 반복되는 루틴이 있다. 아내가 '大자는 너무 많으니까 中자로 시키자."라고 하면 내가 "大자도 부족할 걸!" 하는 식이다. 고기를 발라주어야 먹던 아이들은 어느 때부터 직접 뼈를 들고 먹었다. 특히 둘째 아이는 뼈를 반으로 잘라 그 안에 있는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아빠도 그렇게는 못 먹는데 어디서 저런 기술을 익혔을까 싶다. (나중에 알았는데 오무라이스 잼잼이라는 만화책에서 배웠단다) 이쯤 되면 大자도 약간 부족하다 싶다. 다들 배가 불러 숨 쉬기도 힘들다고 할 때 "밥 볶는다!"라고 하면 또 아내가 "배 부르니까 하나만 볶자." 한다. 아이들도 더는 못 먹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공깃밥 2그릇 볶아주세요."를 외친다. 결국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우고 일어나면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감자탕에 진심인 가족이 있을까 싶다. 이 정도면 감자탕 집에서 홍보 모덜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음식이 있다는 건 삶에 큰 즐거움이다.
이제 정말 배불러 숨도 쉬기 힘들다면서 아내는 곧장 맥도날드로 향한다. 후식 먹을 배는 남겨 뒀단다. 오레오 아포가토와 맥플러리를 하나씩 손에 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우리 가족 음식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