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그림으로 만든 2022년 달력

by 조이홍

매해 연말이 되면 그해 찍은 사진을 가지고 아내와 나는 둘만의 작은 의식을 진행한다. 아이들 성장 앨범과 다음 해 달력을 만드는 일이다. 천 장 넘는 사진을 일주일 간에 걸쳐 100여 장 안팎으로 엄선해 놓으면 아내가 "이 사진은 오케이, 저 사진은 바꿔! 내가 실물하고 똑같이 나왔잖아, 내 다리가 저렇게 두꺼워!" 하며 최종 사진을 결정해 주었다. 그럼 그 사진을 바탕으로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성장 앨범을 각각 한 권씩 만들고 또 탁상 달력과 벽걸이 달력도 각각 만들었다. 아이들 성장 앨범은 혼자 찍은 사진과 형제가 함께 나온 사진을 5:5 비율로 넣고, 전체 가족사진도 몇 장씩은 반드시 넣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찾기 힘들어진 '형제애'를 되살려 주기 위한 아빠와 엄마의 숨겨진 작은 노력이었다.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두 해를 훌쩍 넘기면서 여러 부작용이 속출했지만, 아마도 가장 큰 피해는 가족 여행이 아닐까 싶다. 평상시에 비하면 가족 여행 횟수가 부쩍 줄었다. 여행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사진 찍을 일도 줄었다. 집안에서, 텃밭에서, 동네 뒷산에서 찍는 사진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 해에 평균 3~4천 장 이상 사진을 찍었다.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 덕분이긴 했지만 아내가 사진 찍히는 걸 참 좋아했다. 아내를 찍어주던 카메라는 아이가 생기니 자연스레 그들에게 향했다. 많은 사진을 한 번에 정리하려면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래서 평소에 정리해 두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이나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사진을 찍으면 미리 '베스트' 폴더를 만들어 잘 나온 사진을 따로 보관해 두었다. 이 사진들만 연말에 정리해도 일주일 정도 걸렸으니 사진이 참 많기는 많았다. 그러나 지난 두 해는 찍은 사진이 거의 없어 딱히 정리할 것도 없었다. 지지난 해에는 겨우 아이들 성장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채웠는데 지난해에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성장 앨범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지금 같아서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듯싶다. 당장 지난해 성장 앨범을 2월이 되어가도록 손도 대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요즘도 가끔 자신들의 성장 앨범을 꺼내 보며 즐거워한다. 생각나지도 않을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키득키득 웃는다. 더는 이런 즐거움을 선사하지 못할 것 같아 아빠 마음은 까맣게 타는 중이다.


사진이 정말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내 그림이 점점 쌓여갔기에 올해 달력은 아내 그림으로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 아내도 반기는 눈치였다. 평소 만드는 달력보다 두 배는 심혈을 기울여 아내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아내의 꼼꼼한 디렉팅이 있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연말에 만든 달력이 2월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택배 파업 때문이었다. 제조사에 문의했더니 우리 지역은 배송이 지연된다는 말만 있을 뿐 언제 배송된다고 확답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번에 제작한 게 '달력'이고 시간이 지나면 달력을 만든 의미가 없지 않겠냐고 항의했더니 다른 택배사를 통해 이제 겨우 보내준 것이다. 아마 항의하지 않았다면 언제 보내줄지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달력은 예상보다 잘 나왔다. 아내도 나도 무척 만족했다. 뭐, 아내 그림이 워낙 좋으니까 달력은 거들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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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진으로 만든 달력도 좋지만 아내 작품으로 달력을 만드니 뭔가 굉장히 뜻깊은 일을 해낸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요즘 누가 엄마한테 안 예쁘게 말하나 내기라도 하듯 밉게 말하는 아이들한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차원에서라도 아내 달력은 꽤 효과가 좋았다. 아이들도 새해가 되면 으레 만들어지는 줄 알았던 자기들 달력이 안보이니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하긴 언제부턴가 여행지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고 하면 어찌나 비싸게 굴던지 아빠가 애원하고 또 애원해야 겨우 사진 한 장 찍어 주는 톱스타급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누굴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찍나 싶기도 했다. 이 참에 사진 찍는데 협조하지 않는 아이는 다음 해 달력에서 퇴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로 삼아볼까 한다. 아내 작품으로 만든 2022년 달력, 여러모로 참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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