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보일러가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번 겨울이 시작되기 전, 아직 햇살 자락에서 기분 좋은 따뜻함이 한껏 배어 나올 무렵 부모님 댁에 온열 온풍기를 새로 장만해 드렸다. 부모님 집은 꽤 낡았다. 외관만 보면 그럴싸한 2층 집이었지만 실은 정말 오래되었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이사했으니 집도 어느새 불혹(不惑)을 훌쩍 뛰어넘어 두꺼비도 싫어할만한 헌 집이 되었다. 그 집에서 4년을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천사 같은 아내를 만나 결혼했으니 오롯이 그 집에 머문 시간은 대학시절뿐이었다. 금방 떠날 사람이란 걸 알았는지 그 집은 내게 情을 주지 않았다. 내게만 유난히 인색했다. 한 겨울에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입김이 나올 정도로 유독 내 방은 외풍이 셌다.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자도 겨울밤은 지루한 흑백 영화처럼 길고 방안 공기는 우연히 다시 만난 헤어진 연인처럼 냉랭했다. 1970~80년대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 중반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내 방만 그랬는데 지금은 다른 방들도 점점 외풍이 심해졌다. 내 방 옆에 옷방, 옷방 옆에 부엌, 부엌 옆에 안방 순서로 차례차례 시베리아로 변했다. 몇 차례 목돈을 들여 보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름살이 늘어나는 부모님 얼굴처럼 그 집도 세월이 곳곳에 깊게 주름을 패어 놓은 탓에 결코 새 집처럼 온전해지지 않았다.
어느 해부턴가 부모님은 월동 준비로 거실 한편에 연탄난로를 들여놓았다. 연탄난로는 넓지 않은 거실을 후끈 달아오르게 할 만큼 화력이 세지는 않았지만, 곁에 가만히 앉으면 나른한 낮잠에 빠지게 할 만큼 온기를 내어주었다. 게다가 밤새도록 끓인 된장국은 어머니 손맛에 은근한 연탄의 불맛까지 더해져 몇 그릇을 비워도 계속 먹고 싶은 맛을 뽐냈다. 가끔 군고구마도 구워 먹고 쫀대기도 구워 먹었다. 제법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 연탄난로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내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이자 명절 때나 잠깐 다녀가는 막내아들의 철없는 플라세보였다. 여든을 넘기신 부모님께 연탄난로는 성가신 애물단지였다. 하루에 두 번, 특히 새벽, 빠짐없이 갈아주어야 했고, 연탄을 보관하는 창고가 1층에 있어 일주일치를 일주일마다 2층으로 옮기는 노고를 감당해야 했다. 결코 낭만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온열 온풍기였다. 마침 수소문해보니 가정용으로 나온 제품이 있어다.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아이들 자라는 것만 알았지 부모님 주름살 늘어나는 것은 몰랐던 막내아들이 죄송스러운 마음을 숨기려 온열 온풍기 값을 지불했다.
설에 부모님 댁을 찾아뵈었더니 온열 온풍기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가정용 등유를 주식으로 삼는 녀석은 예상보다 난방비도 적게 나와 부모님도 매우 흡족해하셨다. 솔직히 기껏 온풍기를 들여놨는데 기름값이 아까워 작동시키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에어컨이 그랬다. 매일 전화를 드려 안부를 여쭙는데 온풍기를 들인 이후로는 오늘은 뗐는지, 얼마나 뗐는지 확인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 부모님은 연탄값보다 한 달에 2만 원 정도 더 나오지만, 일단 작동시키면 거실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니 돈이 아깝지 않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연휴 기간 내내 '정말 이 집이 그 집 맞나!' 싶을 정도로 푸근해진 집안 온기에 나도 깜짝 놀랐다. 빼앗긴 들, 아니 시베리아 벌판 같았던 우리 집에도 마침내 봄이 찾아왔다. 진작에 놓아 드릴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성능 좋은 온열 온풍기 덕분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애먼 '가스보일러'가 눈엣가시가 되었다. 아버지는 온풍기 덕분에 동파 방지를 위해서만 가끔 작동시키는 가스보일러를 떼 버리자고 하셨다. 안방에는 아내가 선물한 뜨끈뜨끈한 돌침대가 있고, 거실에는 온열 매트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가스비는 불필요한 지출이었다. 어머니 의견은 달랐다. 그나마라도 있어야 자식들(막내아들과 손주들) 올 때 작동시켜 따뜻한 방에서 재울 수 있고, 부엌일 할 때 온수도 반드시 필요하니 그냥 두자고 주장하셨다. 당연히 자식들은 어머니 의견에 동조했다. 사실 어머니는 한 겨울에도 찬 물에 설거지를 하셨다. 아버지의 말단 공무원 박봉 덕에 평생 근검절약이 몸에 배었다. 그런 어머니가 겨울이라고 해봐야 3개월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따뜻한 물을 사용하면 얼마나 사용하실까? 어머니는 그런 발상을 한 아버지께 서운함을 느끼셨다. 평생 아버지 뒷바라지하며 오로지 남편만 바라본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가 미운 날이 더 많다고 막내아들에게 나지막이 고백하셨다.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하셔도 왠지 어머니의 시선이 여전히 아버지를 향한 것 같아 마음이 복잡했다. 아들인 내가 봐도 아버지는 정말 어머니한테 잘하셔야 한다. 정말로!
아버지께 그간 비밀에 부쳤던 '어머니 책'에 대해 처음 말씀드렸다. 자식, 손주들이 어머니(할머니)를 생각하며 한 편씩 글을 작성했다고. 미완의 어머니 책이 완성되려면 아버지 글이 꼭 필요하다고. 자식들은 모르는 연애 이야기를 써주심 어떨지 여쭈었다. 아버지는 60년 전 이야기라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어머니께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염치가 없어 글은 못 쓸 것 같다고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미안한 마음을 편지로라도 담아보라고 아버지께 강권했다. 아버지가 그러마 하셨지만 설이 두 주 지난 지금까지 아직 한 글자도 못 쓰셨단다. 편지와는 별도로 부모님께 일기를 써보시라고 권해드렸다. 글쓰기가 주는 치유나 위로 효과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드리지 않았다. 무료함도 달래고 일상을 하루하루 적어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재미가 솔솔 하다고 은근한 말로 북돋았다. 물론 부모님이 일기를 쓸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백 세 시대, 지금부터 쓰기 시작해도 대하소설 한 질은 거뜬하다. 그래서 이제 안부 전화의 레퍼토리가 바뀌었다. "일기 쓰기 시작하셨어요? 오늘부터 꼭 쓰세요."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