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고무줄놀이할 때 부르는 노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고백하자면 개구쟁이였던 국민학교 시절의 나는 여자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던 고무줄을 칼로 자르고 도망가는 악행을 가끔 저지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키가 20센티 이상 컸던 여자 아이에게 잡혀 등짝 스매싱을 서너 차례 맞곤 했다. 그 여자 아이는 보통 남자아이에 비해서도 머리가 하나 더 있을 정도로 키가 컸고 운동회 때마다 계주 대표를 할 만큼 달리기도 빨랐다. 뻔히 잡힐 걸 알면서도 그깟 고무줄 끊기 장난이 왜 그리 하고 싶었는지. 아마 고무줄놀이를 하던 여자 아이들 중에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달리기 잘하는 그 아이는 아니었다.)
만약 좋아하는 아이가 없었다면 나도 고무줄놀이에 끼고 싶어 심술을 부린 것일지도 몰랐다. 점심시간에 남자아이들은 주로 축구를 하고,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놀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축구보다 고무줄에 더 관심이 많았다. 집에 누나들이 많은 탓인지도 몰랐다. 실제로 동네 여자 친구들과 어울려 고무줄놀이를 자주 했다. 자주 할 뿐만 아니라 잘하는 편에 속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고무줄놀이할 용기가 없었다.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와 어울려 고무줄놀이를 했다간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할 게 분명했다. 결국 나의 비겁함이 낳은 삐딱함으로 이 편에도 저 편에도 속하지 못한 박쥐가 되어버렸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결국 축구를 선택했다.)
고무줄놀이할 때 부르던 '자유의 길'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요즘으로 치면 수능 금지곡처럼 한번 부르면 온종일 흥얼거리는 마성의 멜로디였다. 가사 또한 시대정신과 딱 맞아떨어졌다. '반공'이 곧 '국가 안보'인 시대였다. 이승복 동상이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학교마다 하나씩 있던 그런 시대. 누가 가장 먼저 이 노래를 고무줄놀이할 때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적어도 우리 동네와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따라 부르는 최고 히트곡임이 분명했다.
자유의 길로
무찌르자 공산당 몇 천만이냐 (삼천만)
대한 남아 가는 길 이 길뿐이다
나아가자 나아가자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 나아가자 승리의 길로
이 노래의 원곡이 한국전쟁 당시 불렸던 '승리의 노래'라는 걸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원곡 가사에는 '쳐부수자 공산군 몇 천만이냐 우리 국군 진격에 섬멸뿐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맨 앞에 '자유의 기로'는 출처가 불분명했다. 아무튼 이 노래가 고무줄놀이에 불리게 된 건 7~80년대 아니라 훨씬 이전, 한국전쟁 직후, 일지도 몰랐다. 사실 만화 영화 '똘이장군'처럼 이 노래도 어린이를 위한 반공 교육의 일환으로 누군가가 교묘하게 고무줄놀이할 때 부르도록 계획한 것이라는 음모론에 빠진 적도 있었다. 3S 정책이 횡행하는 시대였기에.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80년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노랫말이 울려 퍼졌으니 이 정도면 시대정신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을 듯싶다.
요즘 아이들도 고무줄놀이를 하는지 궁금했다. 만약 한다면 어떤 노래를 부를까도. 설마 여전히 '자유의 길'을 부르는 건 아니겠지? 최신 정보는 아니지만 5~6년 전 어떤 매체를 보니 아이들도 고무줄놀이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반갑고 신기했다. 아직 아이들에게 맑디맑은 동심이 남아있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고무줄놀이할 때 부르는 아이들의 노래가 섬뜩했다. 이게 정말 요즘 아이들의 시대정신이라고?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싶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믿지 못할 듯싶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 명단에 올라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고
졸업이라는 석방을 기다린다.
사실 이 노래는 조정래 작가님의 <풀꽃도 꽃이다> 2편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줄넘기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지만 핍진성(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을 중요시 여기고 더군다나 조 작가님은 사실을 다루는데 능숙함과 동시에 현장 취재를 매우 비중 있게 다뤘다. 문학적 허용 범위 안에서 다소 과장은 됐을지라도 근거 없는 이야기로 단정 짓기 곤란했다. <풀꽃도 꽃이다>는 아름다운 장미만 꽃이 아니라 이름 없는 들꽃도 아름답다는 의미로 지은 제목이다. 아름다운 장미란 공부 잘하는 상위 10% 학생이고, 풀꽃은 나머지 평범한 학생들을 말한다.(이들에게는 모두 다른 재능이 있다) 모두 장미가 되라고 강요하는 우리 교육 현실을 따갑게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정말 훌륭한 소설이다.(물론 재미도 있다)
나는 보았다.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이 사이좋게 고무줄놀이도 하고, 공차기도 함께 하는 걸. '전우의 시체'나 '자유의 길'이 아니라 '퐁당퐁당'이나 '노을'을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하는 걸. 초등학생이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학원으로 내몰리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책을 읽고 자유롭게 소감을 나누는 걸. 아이들이 친구가 이겨야 할 경쟁상대가 아니라 함께 자라는 동반자라고 깨닫는 걸. 안타깝게도 나는 눈치를 챘다. '아, 이건 현실이 아니구나. 꿈이구나.' 그리고 깊은 한숨과 함께 한겨울 밤의 꿈에서 깨어났다. 수백만 부가 팔린 <태백산맨>과 달리 <풀꽃도 꽃이다>는 판매 실적이 저조한 편에 속했다. 조정래 작가님이 안타까워하는 건 책이 적게 팔려서가 아니라 교육 현실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학부모)들에게 호응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내가 뭐라고 교육 현실에 대해 언급하겠는가. 그저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강풍에 휩슬리지 않게 잘 다독이는 수밖에. 풀꽃도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아름답다는 걸 보여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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