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아니고 Typist입니다.

3월 5일, 글쓰기의 길(道)을 찾아서

by 조이홍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왔다면,
그것에 대해 톡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게 작가의 남은 본분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 불편한 편의점 中


조정래 작가님은 네임펜으로 한 자 한 자 공들여 작품을 쓰신다. 문학(소설)이 예술인 이유는 단지 그 형식이나 내용뿐만 아니라 작가의 부단한 노력과 창작을 향한 열정, 고통이 고스란히 스며있기 때문이라고 작가님은 믿는다. 나도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연필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썼다. 지금도 그 원고들은 따뜻한 봄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씨앗처럼 메마른 서랍 속에서 오지도 않는 단잠을 청하고 있다. 빼앗긴 들에도 언젠가 봄은 오겠지 싶다가도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원고에 깊은 한숨이 일으킨 먼지의 소요를 보면 당분간 추운 겨울이 계속될 성싶기도 하다. 이쯤 되면 자장가를 불려줘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호기롭게 시작한 연필로 쓰기는 생각만큼 오래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연필을 꼭 쥔 손가락이 무척 아팠고, 조금 오래 쓰면 팔 전체가 욱신거렸다. 게다가 손바닥이 어느새 연필심으로 가득한 원고지를 빗자루질하듯 쓸어 회색빛 흑연을 두툼한 손으로 잔뜩 옮겨왔다. 연필로 글쓰기가 작가스럽긴 해도 계속해야 할 만큼 뚜렷한 장점은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럴 때는 빛보다 빠른 포기가 제격이다. 사회에 발을 내디딘 이래 연필(볼펜)로 뭔가를 써야 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신입사원 때 선물로 받은 몽블랑 볼펜은 20년이 넘도록 볼펜심 한번 교체하지 않았다. 연봉 협상할 때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사용하니 20년을 사용해도 언제나 새것 같았다. 한 번은 팀장 평가할 때 수기로 답안을 작성하라고 해 오히려 인사팀 후배한테 불같이 화를 냈다. 요즘 누가 볼펜으로 쓰냐며! 그랬던 내가 연필로 쓰기가 가당키나 했을까! 그래도 한 3개월은 연필로 쓰려고 노력했으니 애썼다 내가 나를 칭찬했다.


글쓰기가 잘 되는 날이 있으면 잘 되지 않는 날들은 더 많다. 쓰고 싶은 글을 쓸 때는 전자에 해당하고, 쓰기 싫은 글을 쓸 때는 후자에 해당한다. 누가 글 써달라고 원고 청탁한 것도 아닌데 쓰고 싶은 글이 어디 있고, 쓰기 싫은 글이 어디 있을까? 그저 쓰고 싶은 날과 쓰기 싫은 날이 있을 뿐. 브런치에 올리는 글들은 생활 속에서 글감을 찾는다. 글감을 찾는다기 보다는 글감이 온다.(영감이 아니라 글감이다) 생활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일들이 모두 글감이 된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가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아내는 영원한 창작의 뮤즈다. 대부분 깊은 고민보다 즉흥적으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방금도 아내가 참신한 글감을 하나 주었다. 아직 쓰지도 않은 글이 재미있어서 혼자 킥킥대고 웃었다.


소설도 아주 가끔 쓰지만 손을 놓지 않고 있다. 요즘은 브런치에 올렸던 한뼘소설(스마트소설)을 단편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200자 원고지 3~4매 정도 짧은 글을 50~100매까지 확장 중이다. 이 정도면 리모델링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짓는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보통 한 편 쓰는데 열흘 정도 걸린다. 그중 7~8일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정작 글쓰기는 이틀이면 끝난다. 그럴 때면 생각의 속도를 타자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다. 군대 있을 때 작전병으로 복무했다. 작전병 중에서도 특기가 일명 '워드병'이었다. 전성기에는 1000타까지 나올 정도로 빨랐고, 타이핑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런데도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보다 생각이 자꾸만 앞질러 나갔다. 글자들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럴 때는 글 쓰는 행위가 무척 즐겁고 행복하다. 글쓰기란 재능도 아니고, 영감도 아니고 오랜 사색 끝에 나온 것이라 믿게 된다. 그렇게 두고두고 생각해도 지겹지 않은, 마치 첫사랑처럼 머리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정을 마구 요동치게 만드는 대상을 만난다는 게 글쓰기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조정래 작가님은 글쓰기에 몰입하고 나면 물건을 만지지 못한다고 했다. 글쓰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면 몸에서 그렇게 정전기가 일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신다고. 며칠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늦은 밤까지 단편 하나를 끝내고 잠옷을 갈아입으려고 꺼내는데 옷걸이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그저 찌릿한 정도가 아니가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불꽃이었다. 너무 놀라 옷이 걸린 채로 옷걸이를 집어던졌다. 놀란 와중에도 내심 기뻤다. 글쓰기에 몰입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무언가에 이토록 미칠 수 있고, 그것이 글쓰기여서 다행이다 싶었다.


내 글의 상당 부분은 아직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 <장르만 로맨스>라는 영화에서 등단하지 않은 작가의 원고는 '작품'이 아니라 '습작'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싸울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복부를 강타당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그런데 타이핑은 습작보다도 못하다. 굳이 순서를 따지면 타이핑 => 습작 => 작품이 되는 게 아닐까? 일필휘지로 작품을 써 내려가는 능력이 없으니 타이핑부터 찬찬히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수많은 타이핑의 일부가 습작이 되고, 수많은 습작의 일부가 작품이 되는 그런 길(道)이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열심히 타이핑하는 내가 부끄럽지 않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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