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 별 걸 다 신경 쓴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했다. 붐비는 노선이 아니라 그런지 출근 시간을 조금 웃돌던 지하철 안은 제법 한산했다. 그래도 빈자리는 눈에 띄지 않으니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뭐, 어차피 몇 정거장 가지 않으니 오랜만에 차창 밖을 구경하리라 마음먹었다. 어라? 맞다. 이거 기차가 아니고 지하철이었지. 차창 밖으로 근사한 풍경이 지나갈 리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하철 안으로 시선이 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운 분홍 빛깔이 돋보이는 '임산부 배려석'이 마침 하나 비었다. 임산부 배려석은 늘 비워두어야 하는 자리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내 나이 또래, 아니 나보단 네댓은 많아 보이는 건장한 외형의 아저씨가 그 자리에 떡하니 앉았다. 물론 주위에 서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몇 명 되지 않았고, (추측컨대) 임산부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한 마디 해주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는 불의를 보고 잘 참는 사람이었다. 입은 꾹 다물고 눈으로만 아저씨를 혼쭐 냈다. 미운 사람은 더 미워 보인다고 다리는 왜 그리 쩍 벌리고 앉고, 고개는 꼿꼿이 들고 있는지…. 차라리 잠든 척이라도 하던가! 오랜만의 지하철 나들이가 참 불편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임산부 배려석에 젊은 여성이 앉았다. 초기 임산부는 배가 부르지 않으니 임산부인지 아닌지 외형상 구분하기 힘들었다. 사실 초기 임산부야말로 유산 위험성이 높기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여러 가지 정황상 미혼 여성처럼 보였지만, 사람 보는 눈이 영 꽝인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 없었다. 초기 임산부려니 했다. 그런데 마침 노부부가 지하철에 오르더니 임산부 배려석 앞에 나란히 섰다. 두 분 모두 연세도 많았지만,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신지 지팡이를 집고 계셨다. 몸도 불편하고 연세도 많은 할머니가 교통약자석으로 가셨으면 좋으련만 하필이면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계시니 그 투샷이 왠지 불편했다. 앉아 있던 여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할머니는 지그시 눈을 감으셨다. 아무도 관심 없을 그 상황이 나는 무척 신경 쓰였다. 목적지에 도착해 먼저 내렸지만, 그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했다.
교통약자석은 고령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환자나 부상자, 무거운 짐을 든 자, 일시적 교통약자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임산부 배려석에 이미 다른 임산부가 앉아 있으면 교통약자석을 이용할 수 있다.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7년이 되었지만, 임산부보다 임산부 아닌 사람이 더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임산부에게 자연스레 양보한다면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 없겠지만, 그런 형편이 되지 않으니 임산부에게도, 일반 탑승객에도 불편한 가시 방석이 지하철마다 자리 잡았다. 사실 생각보다 문제는 복잡하지 않다. 임산부 배려석은 그 이름처럼 임산부만 앉으면 된다. 평소에는 임산부가 언제나 앉을 수 있도록 비워두면 된다.
사무실이 강남역에 있을 때는 집 앞에서 회사 앞까지 버스로 'door to door'가 가능해 참 편했다. 게다가 우리 집이 종점 근처고 회사는 회차 지점이라 언제나 앉아서 출근하고 앉아서 퇴근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늘 그렇듯이 비교적 공간이 넓은 뒤쪽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몇 정거장 지났을까?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이 앉아서 휴대폰을 보던 이들이 좌우로 하나둘 픽픽 쓰러지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배가 제법 부른 임산부가 버스에 올랐다. 내가 앉은 뒷자리까지 오는데 아무도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았다. 얼른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더니 임산부 여성이 짐짓 놀랐다. 그 표정은 고맙다기보다 분명 놀라는 표정이었다. 회사까지 한 시간 이상 서서가야 했지만 힘들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사람에 치여 책도 읽지 못했지만 왠지 마음이 홀가분했다.
버스든 지하철이든 앉아 있다 교통약자를 보면 얼른 일어선다. 그럼 상대방이 무척 곤란해한다. '요즘 누가 양보를 해?' 하는 표정이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몸을 빌어 세상에 나왔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이를 먹어 간다. 양보는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일 때 아름답다. 하지만 때로 따가운 눈총이 나를 향한다 싶으면 훌훌 털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반드시 근처에 교통 약자가 있을 터이니. 아직 우리 사회에 약자를 품는 온기가 남아 있으면 좋겠다. 이제 곧 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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