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쓰다 시가 왔다

3월 13일, 김용택 선생님 수필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

by 조이홍

중학생인 첫째 아이 읽으라고 '중학생을 위한 한국 수필 베스트 50'을 사다 주었다. 영어 공부와 수학 공부는 기본에 역사와 과학까지 예습하는 아이가 시간을 할애해 책 읽는 것은 꺼려해 아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읽을 수 있는 짧은 글들을 모아 둔 책을 사다 준 것이다. (이와 함께 중학생을 위한 한국 단편소설 50 1, 2권도 함께 사주었다.) 그런데 정작 읽으라는 아이는 읽지 않고 요즘 내가 그 책들을 읽고 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이다. 오늘 읽은 김용택 선생님의 '책을 따라다니며 글을 쓰다 - 그리고 시가 내게로 왔다"가 여러모로 글쓰기 침체기에 있던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되어 주었다.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탓에 김용택 선생님은 동네에서 글 쓰는 사람도 책 읽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선생님도 책보다는 오히려 영화에 더 관심이 많았단다. 책 살 돈도 없는 가난한 시절이었는데 영화는 어떻게 봤을까? 극장 앞을 기웃거리다 검표하는 사람(형)과 친해져 영화 상영 20분이 지나면 공짜로 들어갔단다. 그러다 고3 때 교과서에 나온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소설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해, 이후 이광수, 박계향, 손창섭의 소설을 접하게 되었고 비로소 진정한 '읽기' 애호가가 되었다. 선생님과 책의 본격적인 인연은 아이러니하게도 깊은 산골 분교로 발령받게 되면서부터였다. 첩첩산중까지 책을 팔러 온 월부 책장수로부터 <도스토옙스키 전집>, <헤르만 헤세 전집>, <이어령 전집> 등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주경야독 시절이요, 눈이 많이 온 날은 온종일 책만 읽는 행복한 날들이라고 회상했다. 방학 동안 밤을 새워 가며 오롯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나는 놀랐다.
그 작은 책 속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쉬고 펄펄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 작은 책 속에 그토록 가슴 아프고
기쁜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졌던 것이다.
놀랍고도 놀라웠다.
책 속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을
나는 숨이 막히게 따라다녔다.


'책 속에 숨 쉬는 사람들을 나는 숨이 막히게 따라다녔다.' 이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김용택 선생님은 책을 통해 비로소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꼈다. 이런 시선은 결국 세상은 살아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고,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날이면 날마다 자신 속에 자라고 있는 그 어떤 힘으로 늘 충만해지고 막강해지기에 이르렀다. 믿기 어렵겠지만 독서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주었다.


아! 아이들이 하나하나로 보였던 것이다.
그 전에는 아이들 30명이 모두 하나로 보였는데,
그날 아침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따로따로 보였던 것이다.
나는 비로소 선생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나는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날 김용택 선생님은 일생을 '선생님'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무엇이 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모두 흘러가는 강물에 떠내려 보냈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고 집에 오면 책 속에 묻혀 지내는 삶, 거기에서 글이 태어났다. 소설, 시, 동시 글이란 글은 죄다 써내려 갔다. 글이, 글이 아니라고 선생님은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렇게 홀로 시간 속을 글로 빼곡히 채웠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이름 있는 시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시인이 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내게 다가오고 일어나고 쓰러지는
온갖 생각들을 책을 통해 또 밀어내고 쓰러뜨리고 일으켰다.
나는 달빛을 찍어 시를 썼고, 달빛 아래 서서 시를 썼다.
나를 꺼내 갈 흰 손을 기다리던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나는 어쩌면 평생 '달빛을 찍어 시를 썼고' 같은 문장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부지런히 읽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도 언젠가 '소설가가 되려고 소설을 쓴 것도 아니다'라는 표현은 써보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 그전에 소설이 내게로 와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역시 김용택 선생님 수필의 압권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좋은 문장들이 자극도 되었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글쓰기에 대한 힘을 얻었다. 글쓰기에 침체기인 동료 작가님도 이 문장에서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 아무튼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써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작가니까.


내가 처음 글을 써 보려고 했던 기억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책을 읽다가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나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저 책을 쓴 것이 사람들이지.
그렇다면 나도…….'
그리고 나는 글을 써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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